영남알프스 트레킹 3박 4일
태풍
울릉도트레킹을 3박 4일 일정으로 계획했는데 동해안 태풍으로 인해 배가 출항하지 못해 울릉도일정을 취소하고 대체일정으로 영남알프스트레킹을 가기로 했다 사무소 일로 인해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강행하기로 했다. 이 글을 쓰는 9월 5일 마음이 편치 않다 전후사정을 되돌아보고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나 자신을 뒤돌아보고 반성할 점이 있다면 반성할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생각을 어떤 틀에 올가 메려 하는 행위는 따를 수도 인정할 수도 없다
아래 일정표는 실제 산행 중 손전화기 메모장에 기록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왔다.
2016년 8월 30일-9월 2일
8월 30일
서울 7:00 ktx
울산역 10:00 328 버스
배내고개하차 점심 먹고 산행시작 10:50 도착-12:00 출발
배내봉 12:45-12:55
간월산 12:40
간월재 15:00-50대 피소휴식
신불산 17:00
신불재 박 18:00
8월 31일
신불재 7:40 출발
취서산 (영축산) 8:45
파래소폭포 11:50
죽전마을 중식 13:00-14:30 부산식당중식
등산로좌측 사자평
재약산(수미봉) 18:20
천황재 박
9월 1일
천황재 출발 8:10
천황봉(사자봉) 9:00
샘물가계-막걸리
능동산약수터 점심 라면 12:00-13:00
능동산
배내고개갈림길 13:20 우. 정 하산
석남고개
가지산 1240m 16:30-17:20 막걸리
아랫재 박 19:00
9월 2일
아랫재출발 7:30
운문산 9:00
딱밭재
석골사 12:00 산행종료
석골마을 -밀양 12:30-13:00
밀양 ktx산천 15:22
울산의 상징 고래조형물이 울산역광장에 설치되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조형물울 보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내 머릿속에는 바다에서 작살을 맞고 피 흘리는 고래가 연상되어 그리 좋지 않은 조형물로 생각된다 한때는 어부들의 주머니를 든든하게 해 줘을 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고래를 구경할 수 있는 관광상품도 있지만 아직 옛 포경의 모습을 씻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8월 30일
서울 7:00 ktx-울산역 10:00-역광장에서 328번 버스
배내고개하차 점심 먹고 산행시작 10:50 도착-12:00 출발
배내봉 12:45-12:55
간월산 12:40
간월재 15:00-50 대피소휴식
신불산 17:00
신불재 박 18:00
이지 도는 인터넷에서 가져온 지도다 많은 산사람들이 영남알프스를 등산할 때 코스로 많이 이용하는 대표적인 등산코스지도인 것 같다 우리는 이날 산행은 이지도에 표기된 역방향으로 산행을 했다 일명 영남알프스 태극종주코스이다 영축산 부분과 운문산에서 마지막 부분이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그런대로 태극을 그리는 산행을 했다.
배내고개에서 산행은 시작되었다 울산역에서 328번 버스를 타면 이고개를 넘어간다 고갯마루 정상에서 식당이 있어 이른 점심을 먹고 배내봉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14일간의 긴 중국여행의 여독이 풀리기 도전에 동료들과 약속이어서 같이 할 수밖에 없었다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을 이주동안 여행 후라서 인지 푸르른 산을 보는 것이 어찌나 좋은지 연속감탄사 연발이다.
약 1540년 전에 이 산기슭에 간월사라는 사찰이 있어서 산 이름도 간월산이라 하였다 한다.
배내봉에서 간월산 간월재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적당한 계단과 데크길 푸르름이 그리고 멀리 울산 앞바다의 풍경이 너무 좋았다 간월산에 올라섰을 때는 정상에서부터 간월재 신불산으로 이어지는 억새밭은 눈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첫날 이곳이 생뚱맞게도 왜 알프스라는 이름을 엊게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풍경이었다 3,4000m의 높은 설산은 없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는 사계절이 있기에 알프스라는 이름을 지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겨울풍경을 보러 한번 와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영남알프스유래
영남알프스는 울산, 양산, 밀양, 청도, 경주의 경계에 솟아 있는 높이 1천 미터 이상의 9개 산군(山群)을 통칭하는 것임. 2000년도 전후 한때 ‘울주 7봉’이란 편협한 명칭으로 불린 적도 있었음. 가지산, 신불산, 간월산, 영축산, 운문산, 고헌산, 천황산, 재약산, 문복산이 그것들임.
등산객이라면 영남알프스라는 명칭이 언제 생겼고 그 작명자가 누구인지가 알고 싶을 것임. 주로 부산사람들 가운데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았음. 우리나라에 등산객들이 점차 늘어나던 1970년대 후반기에 생겨난 것이라고 함. 일본의 산악인들과 교류가 잦았던 부산 산악인들이 일본 산악인들이 “일본에는 북알프스와 남알프스와 같은 절경의 산악지대가 있다.”라고 자랑을 하자, 부산 산악인들이 “우리나라에는 영남알프스가 있다.”라고 맞대응한대서부터 그런 명칭이 생겨났다고 함.
(작성자 영남알프스 뚤꼬지)
신불산(神佛山)은 신령이 불도를 닦는 산이라고 한다
신불산은 왕뱅, 왕방이라고도 부르는데, 모두 왕봉을 말하는 곳으로 산꼭대기에 묘를 쓰면 역적이 난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 신불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억새밭의 풍경이 뇌리를 너무 격한 충격을 줘서 뒤돌아보기를 여러 번 셧터를 수없이 눌러도 질리지 않고 계속 누를 수밖에 없었다 배내봉 간월산 신불산 세 봉 오리를 넘어오니 첫 비박지 신불재를 만나게 되었다 신불재에는 태풍의 영향인지 바람이 세차게 불어 텐트를 칠 수가 없었다 너른 데크에 텐트를 치지도 않고 밤을 보내려는지 젊은 친구 한 명이 자리를 펴고 침낭 속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비라도 오면 어쩌려고 걱정했더니 싸서 내려가면 되죠 우리는 안부로 조금 내려서 샘이 있는 곳 옆에 자리를 잡았는데도 바람은 그칠 줄 모르고 불어댔다. 그곳에는 울산아주머니 두 분도 비박준비를 하고 계셨다.
8월 31일
신불재 7:40 출발
취서산 (영축산) 8:45
파래소폭포 11:50
죽전마을 중식 13:00-14:30 부산식당
등산로 좌측 사자평전
재약산(수미봉) 18:20
천황재(사자재) 박
억새와 일출이 잘 어울리는 아침이다 태풍의 영향으로 바람도 세차게 불고 비도 조금씩 뿌리고 텐트를 치는 바람소리에 첫날밤은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텐트의 문을 열고 눈을 비비며 신불재로 올라서 해맞이를 하려 했는데 구름에 가려 해는 볼 수 없었다 동해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고 억새밭을 보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 텐트로 돌아와 서둘러 아침밥을 하기 시작했다 아우들은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 불교 화엄경과 관련 있는 영축산의 명칭 유래 *
영축산은 석가모니가 화엄경을 설법한 고대 인도의 마가다국에 있던 산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자 표기는 '영축산(靈鷲山)'과 '추기서산(鷲栖山)' 두 가지로 표기되지만 이에 대한 한글 표기는 영축산·영취산·축서산·취서산 등으로 표기되어 있어 혼동을 불러일으켰다. 이 같은 현상은 한자 '추기 또는 축(鷲)' 자에 대한 한글 표기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일반 옥편에서는 '독수리 취'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축'으로 발음하는 것이 보편적이다.그리고 '취 또는 축' 자가 원래 '축'으로 표기되었다는 근거는 1463년(세조 9)에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법화경언해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산 이름 혼동의 원인은 불교에서 유래된 '축(鷲)' 자를 일반인들이 접하기 쉬운 한자사전의 표기 '취'로 읽기 시작하면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혼동을 피하기 위해 2001년 1월 9일 양산시 지명위원회에서 영축산으로 확정되었다.
아침을 먹고 영축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신불재의 억새밭을 뒤로하고 영축산을 오르고 죽전마을로 내려갈 것이다 조금 더 능선을 타고 가다 사살등에서 죽전마을로 내려가고 싶었는데 오랜만의 산행이어서인지 동료들이 힘들어해서 의견을 낼 수가 없어 바로 내려가는 길을 찾았는데 길 찾기가 만만치 않았다 다시 신불재로 내려가 데크가 설치된 곳에서 북쪽으로 내려가면 되는 코스인데 영축산 정상에서 지도에 그려진 코스대로 찾아가 보려 하니 출입금지구역인 습지보호구역을 지나야 원하는 코스로 내려갈 수 있었다 자갈경계지역을 따라가면 등산로가 있는데 그곳은 습지보호구역이라 출입할 수 없는 구역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무릅쓰고 따라가다 보면 이정표가 나와 이정표의 지시대로 따라가면 계곡을 따라 내려가 죽전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진정습지를 보호하고 이곳을 출입금지구역으로 지정하려면 옛 등산로와 이정표등을 철거하고 습지를 돌아갈 수 있는 등산로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보호구역으로 설정은 문제가 있다고 색각 한다
파래소폭포
기우제를 지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의 바래소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계곡등산로에서 휴양림 들어가는 길로 800여 m를 따라 들어가면 시원한 폭포를 만날 수 있다 배낭을 벗어놓고 가벼운 차림으로 폭포를 찾아갔는데 멋진 폭포를 볼 수 있었다 동료가 폭포에 들어가 수영을 했는데 금방 경고방송이 나왔다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죽전마을
이곳 식당에서 김치찌개에 고기를 듬뿓넣고 끓여달라 해 점심을 배불리 먹고 식량을 보충하고 두 번째 비박장소인 천황재를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도로를 따라 배내재 쪽으로 1km 정도를 걷다 도로변 민가을 만나게 되는데 그곳에서 좌측으로 들어서면 산을 깎아 지은 전원주택 몇 채가 있는데 마지막집마당으로 들어서기 전 우측으로 등산안내 표지기를 따라 급경사지를 오르기 시작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30여분을 오르면 완경사의 등산로가 나온다.
사자평
사자평 고산습지
역사적으로 신라 화랑도의 수련장이자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의 승병 훈련장소, 국내에서 가장 큰 고산습지, 습지 정가운데로 실개천이 관통하는 것이 특징, 습지식물이 부패와 분해가 완전히 되지 않은 식물의 잔해가 진흙과 함께 늪이나 못의 물 밑에 퇴적한 지층으로 쌓여 이탄층을 형성하고 있다.
재약산
높이는 1,189m이고, 주봉(主峰)은 사자봉이다. 남쪽 5km 부근에 솟아 있는 재약산(載藥山:주봉은 수미봉 1,018m)과 맥이 이어져, 천황산을 재약산으로 일컫기도 하는데, 이러한 혼동은 천황산이 일제강점기 때 붙은 이름이라 하여 '우리 이름 되찾기' 운동의 일환으로 사자봉을 재약산 주봉으로, 재약산을 수미봉으로 부르면서 생겨났다
* 왕자의 병을 치유한 약수가 있는 산, 재약산의 연원 *
신라 흥덕왕 4년(829)에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병을 얻어 전국 방방곡곡의 명산과 약수를 찾아 두루 헤매다 이곳에 이르러 영정약수를 마시고 병이 낫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로 이 산을 재약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영정약수의 위치는 표충사경내에 있다.
급경사의 등산로를 올라 채면 좌측으로 광활한 억새밭이 나타난다 이곳이 사자평이다 사자평을 따라 걷다 보면 사자평으로 이어지는 임도 비슷한 길이 나타나는데 시간 있으면 사자평도 가보고 싶었는데 그곳을 포기하고 두 번째 밤을 보낼 천황재(사자재)를 향해 걸었다 이곳 역시 바람이 세차게 불어 이곳에서 야영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측으로 내려서면 임도가 나오는데 임도를 따라 조금 들어간 곳에서 야영준비를 했다 이곳에는 쇠파이프를 계곡물 흐르는 곳에 설치해 식수로 사용할 수 있게끔 해놓은 곳이 있어 이물을 식수로 사용했다. 영정약수라 생각하고 ---
천황재
주변의 억새풍경은 나무랄데없이 아름다웠는데 데크시설의 탁자와 의자 등이 부서져 나뒹굴고 있어 보기 좋지 않았다 굳이 탁자와 의자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가을축제기간에 잠시이용하는 정도인 것 같은데 산에서 이런 시설이 없어도 불편은 산을 사랑하는 등산객이라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9월 1일
천황재 출발 8:10
천황봉(사자봉) 9:00
샘물상회-막걸리
능동산약수터 점심 라면 12:00-13:00
능동산
배내고개갈림길 13:20 우. 정 하산
석남고개
가지산 1240m 16:30-17:20 막걸리
아랫재 박 19:00
첫날비박은 세찬바람소리 때문에 설쳤는데 두 번째 야영지는 조용한 장소였고 피로가 겹쳐 잠을 잘 잘 수 있었다
어제는 급경사의 오르막을 올랐는데 오늘은 완만한 능선길을 걸을 것 같다 안개가 옅게 끼어 사자재의 억새풍경이 한결 분위기를 북돋우어주고 있다 억새밭을 뒤로하고 사자봉으로 오르막길 데크계단이 이어지고 있다.
천황봉! 영남알프스를 걸으면서 지명 때문에 여러 가지를 생각게 만들었다 많은 산이름이 불교의 영향을 받아 불교역사에서 유래된 지명들이 많이 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일본식 이름이 많이 지어져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곳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수미봉 사자봉 이미 검토해서 결정된 지명이라면 지자체나 산림청이나 군립공원관리소나 올바른 지명으로 돌려놓는 일에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여기에도 일제의 흔적이
한동안 산새와 맥을 끊기 위해 일제강점기 때 일본 놈들이 중요산들과 바위에 쇠말뚝을 박았는데 이 쇠말뚝을 뽑아내는 운동을 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곳 영남알프스도 많은 산악인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검토해서 없앨 것은 없애고 고칠 것은 고치고 해야 하는데 왜 안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황자가 싫어 수없이 돌로 쫓고 낚서 하고 했던 흔적을 보면서 관계자들이 혹시나 제 글을 본다면 시정해 주기를 바라면서 개인의 생각을 적어봅니다.
샘물상회
1000m의 능선길에 주막집이 있다 이곳은 사람들이 넘나드는 조령이나 이화령이나 이런 곳도 아니다 단지 등산객이 지나다니는 등산로변에 노부부가 살고 있는 화전민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 위치다 노부부의 사생활을 알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긍금해 한마디 던져본다 할머니에게 할아버지 젊은 시절에는 말썽 많이 피위겠어요 했더니 아니여요 말로만 저러지 순한 양반이어요 처음 온 곳이지만 할아버지는 여느 등산객이나 대하신방법은 동일할 것이라 추측해 본다 산속생활이 외로우신지 만나자마자 오랜 친구처럼 농담과 구수한 이야기로 산속을 웃음바다로 일순간에 만드셨다 이곳이 사유지고 옛날에는 목장이었다는 것까지만 알 수 있었다 땀 흘린 등산객이 지나다 시원한 막걸리 마실 수 있는 곳이 샘물상회다 산중주막집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듯도 한데 ---
산은 오를 수 있는 만큼만 올라라
자동차를 이용해 도로나 고갯마루에서 풍경을 구경할 수 있는 사람은 그곳에서 풍경을 구경하면 된다
계곡에 발을 담그고 놀 수 있으면 그곳에서 놀면 된다
산사를 구경하고 그곳까지 걸을 수 있으면 그곳에 머무르면 된다
바위를 탈 수 있으면 바위를 타면 된다
능선을 걷고 종주산행을 할 수 있으면 그곳을 걸으면 된다
히말라야 EBC트레킹을 하다 보면 3440m 높이에 남체바자르라는 곳이 있다 이곳에서 조금 더 올라 3860m 지점에 오르면 히말의 멋진 풍경을 구경할 수 있는 Everest View라는 곳이 있다 이곳에 일본기업가가 호텔을 짓고 헬기를 이용해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사업을 실행했는데 이사업은 관광객을 몇 차례 실어 나르지도 못하고 문을 닫는 일이 있었다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헬기에서 내리자마자 고소증세로 목숨을 잃은 사고가 발생했다 이곳은 지금 트레커들이 지나가면서 차 한잔 마시는 장소로 변해있다
그래서 저의 생각은 산은 아무리 낮은 산이라도 오를 수 있는 만큼만 오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사자봉에서 내리막등산로를 따라내려오다 샘물상회에서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꽃길을 따라 걷다 보면 케이블카 정거장이 나온다 정거장으로 가기 전 나무데크로 멋진 전망대를 만들아놓으곳에서 산아래풍경을 구경하고 케이블카정거장으로 왔는데 등산로가 이어지지 않는다 철책으로 막아버려 어쩔 수 없이 타고 넘어야 했다 등산로와 임도를 번갈아가며 걷다 보면 약수터를 만날 수 있다 능선길을 따라 걷다 보면 약수터를 놓칠 수도 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능동산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내려 뻗은 산줄기들이 눈을 즐겁게 해 주기에 충분했다
석남터널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더 이상 걷기 힘들다는 두 동료를 내려보내고 가지산을 향해 걷는다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암릉의 산새가 위용을 자랑하며 버티고 있다
가지산
원래 석남산(石南山)이었으나, 1674년에 석남사(石南寺)가 중건되면서 가지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 밖에 천화산(穿火山)·실혜산(實惠山)·석민산(石眠山) 등으로도 불렸다.
신라 흥덕왕시대 전라남도 보림사에서 가지산 서라는 중이 와서 석남사를 지었다 하여 부른 것이다. 가지는 까치의 옛말 ‘가치’를 나타내는 이름으로 본다.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가지산에 있는 절. 송광사의 말사(末寺)로, 신라 헌안왕 4년(860)에 보조 선사가 창건하여 가지산파의 중심 사찰로 발전하였다. 또한 인도와 중국에도 보림사가 있어서 이 세 절을 합하여 삼보림(三寶林)이라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860년(헌안왕 4) 보조체징이 초암을 확대해 지은 것으로 통일신라시대의 구산선문 중 하나였다. 가지산파의 근본도량으로 인도의 가지산 보림사, 중국의 가지산 보림사와 함께 3 보림으로 일컬어졌다.
지명에 대해 찾아보았는데 여러 이야기들이 있었다 불교의 구산선문 중에 가지산파의 문중에서 지은절이 보림사 이 절의 스님이 석남사를 지었다 하여 가지산이라는 지명이 붙여졌다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 정확하지는 않은 것 같다.
가지산 주막집
주인만이 알 수 있는 주막집의 유래
실내에는 방문했던 산악인들의 수많은 낙서로 빼곡히 적혀있었다
점심을 라면으로 때워서인지 허기져 나는 라면을 주문하고 동료들은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였다
주막집을 나와 아랫재를 향해 능선길을 따라 걷는다 좌측 멀리 3일 동안 걸어왔던 산새들이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다 오늘하루도 낙조를 보면서 마감할 시간이다 서둘러 마지막 비박지 아랫재를 향해 바쁘게 내려왔다.
9월 2일
아랫재출발 7:30
운문산 9:00
딱밭재
석골사 12:00 산행종료
석골마을 -밀양 12:30-13:00
밀양 ktx산천 15:22
오늘은 산행 마지막날이다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고 했는데 자는 중 새벽 4시경 빗방울이 텐트를 때리기 시작했다 일어나기 싫어 우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소리를 들으면서 한 시간여를 텐트 속에서 미적거리다 일어나 텐트를 정리하고 아침을 해서 먹고 비옷을 입고 서둘러 마지막 알프스의 산 운문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운문산
운문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560년(진흥왕 21)에 창건된 운문사는 고려 937년(태조 20)에 태조가 운문선사(雲門禪寺)라는 사액을 내렸고, 화랑도와 낭도에게 세속 오계를 가르친 원광 국사와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지은 일연이 머물렀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중산행 4일째 산속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내려가는 길이다 딱밭재 법봉 억산까지 능선줄기를 타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운문산에서 최단거리를 택해 석골사로 바로 내려갔다 1000m 이상의 높은 산새여서인지 계곡길도 그리 쉽게 내려설 수 있는 길은 아니었다 아랫재에서 서둘러 출발했는데도 석골사에는 12:00시가 거의 다 된 시간에 도착했다 산사를 뒤로하고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이곳 마을이 원서리란다 사과밭이 많이 보였다 길가에는 바람에 떨어졌는지 낙과가 뒹굴고 있다 사과를 주워 먹으면서 밀양으로 나가는 버스정류장을 찾아갔다.
원서리버스정류장에서 30여분을 기다려 버스를 탔다 밀양터미널까지는 30여분이 걸렸다 하루먼저 내려왔던 두 동료들과 통화하고 밀양역전에서 만났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어서인지 무지배가 고파 점심부 터먹고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은 것으로 영남알프스산행은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