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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미얀마 배낭 여행: 쉐다곤파고다

왜 그럴까? 2025. 1. 24. 14:06

미얀마배낭여행 2

양곤

2015년 12월 4일

양곤도착 0:15 숙소 찾기 7:00 기상 관광

술레파고다, 보족아웅산시장, 쉐다곤파고다, 깐도지호수공원, 쉐다곤야경구경

 

어제 밤늦게도 착해 잠을 설치고 일어나 오늘 관광일정에 들어갔다. 숙소에서 제공한 미얀마식 한식으로 아침을 먹었다. 숙소 주변에는 시장이 인접해 있어 구경거리가 많았다. 시장을 구경하면서 걸어서 술레파고다를 찾아 나섰다.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술레파고다

술레파고다의 위치는 영국식민지시절 파고다를 중심으로 도시계획이 되어있어 거리가 바둑판처럼 정리되어 찾기가 쉬웠다. 양곤거리 로터리중심에 사원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네 생각으로는 절들이 깊은 산속에 있어 불교사원들이 시내거리의 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불교가 이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리라 생각해 본다. 사원을 몇 군데 구경하다 보니 이해가 되었다. 어떤 사원이고 사방으로 출입구가 있고 출입구에서 사원중심까지는 상당항 거리가 있는데 이곳이 이들의 생활공간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쉐다곤파고다와 비교가 되는데 쉐다곤은 미얀마인들의 자부심이라면 술레는 양곤시민들에게 등대와 같은 존재라 한다. 시내의 주요 버스노선이 대부분 이곳을 통과하고 보족아웅산시장이 가까이 있어 도보로이동이 가능한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이곳이 민주화운동의 거점이기도 했다고 한다. 광주의 금남로와 같은 거리인 것 같다.

 

시장에서 탁발하시는 스님 모습도 보이고 미얀마인들의 삶을 모습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숙소에서 술레파고다 가는 길목의 거리 시장모습들이다. 우리의 시장모습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곳이다. 세계에서 최빈국이지만 그런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남국의 과일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고 싱싱한 야채들이 가판대에 차고 넘쳐났다.

 

보족아웅산시장

쉐다곤파고다를 찾아가는 길목에 보족아웅산시장이 있어 둘러보기로 했다. 양곤에서 가장유명하고 큰 시장이란다. 각종잡화 생필품 액세서리 보석 칠기 없는 것이 없는 시장이었다 우리네 남대문시장 같은 곳이다. 동대문시장처럼 직접 물건을 만드는 공장도 시장 안에 같이 있었다.

 

시장을 구경하고 쉐다곤을 찾아가는 길에 양곤순환열차 철길을 만났다. 양곤역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파라얀역구내를 걸어볼 수 있었다.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반가운 볼거리였다. 궤간이 1m인 협궤열차가 다니는 철길이었다. 오늘일정에는 없지만 돌아가는 날 양곤으로 와서 양곤 순환열차를 몇 정거장 타볼계획이 있어 운행시간표 정보를 얻기 위해 정거장에서 시간표를 쳐다봐도 무슨 뜻 이은지 몰라 매표소 아가씨에게 물어보니 손바닥에 친절하게 볼펜으로써 주었다. 철길을 따라 걷다 도로로 올라섰다.

 

쉐다곤파고다

술레, 보족아웅산시장을 들러오느라 많이 걸었다. 쉐다곤 옆  인민공원에서 쉐다곤을 바라보며 잠시 쉬어갔다. 인민공원에서 바라보는 쉐다곤의 모습은 너무 아름답게 보였다. 황금으로 입혀진 파고다의 첨탑이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게 보였다. 찾아보니 한띠와디왕조 여왕 신사우부(1453-1472) 시절 여왕의 몸무게만큼 황금을 보시하여 처음으로 금으로 도금을 하였다고 한다.

쉐다곤은 양곤 시민뿐아나라 미얀마 국민 모두에게 상징적인 사원이라고 한다. 파고다정상에는 다이아몬드, 루비등 수많은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다고 합니다.

인민공원

 

쉐다곤입구는 사방으로 나있었다. 상당히 긴 거리의 건축물 실내의 회랑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가는 통로 좌우에는 수많은 가계들이 즐비하게 들어차있고 기념품 생활용품을 팔고 있었다. 초창기 사원 시절에도 이런 모습이었을까 긍금했다. 생활과 종교 종교의 상업화 세속화 이런 말이 이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우리의 시각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사원의 풍경이다.

 

쉐다곤파고다는 부처님 생전에 만들어진 유일한 황금사원이란다. 양곤시내 어디에서나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지어졌다. 우기가 시작되면 4000mm의비가 쏟아지는 곳이기 때문에 침수를 막기 위해 지표면보다 60m나 흙을 돋우어 사원을 지었다고 한다. 쉐다곤은 황금언덕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양곤시민들은 아침저녁으로 사원을 방문하여 기도를 올린다네요.

1995년 조사에 의하면 탑외벽에 붙여진 황금이 황금판 8688개로 54 ton에 이른다고 합니다.

 

부처님 생전에 지어진 건물로 B.C600년 인도의 부다가야에 미얀마에서 온 상인두명이 벌꿀을 봉양하자 부처는 자신의 머리카락 8개를 뽑아주었다고 한다. 두상인은 미얀마로 돌아와 오깔라파왕에게 부처의 머리카락 8개를 바쳤다고 한다. 오깔라파왕이 부처의 머리카락을 신전에 모신 곳이 쉐다곤 파고다라고 한다.

파고다를 세울 언덕을 만들기 위해 흙을 퍼내 자리가 지금의 깐도지호수라는 전설도 있다고 합니다.

 

깐도지호수공원

쉐다곤구경을 마치고 깐도지호수공원을 찾아 한 바퀴 돌면서 구경하였다. 호수반대쪽에 보이는 쉐다곤의 첨탑이 아름답게 발광하고 있었다. 호수는 관리가 되지 않아 지저분하고 녹조가 많이 끼어있었다. 처음공원을 만들었을 때는 이렇지 않았을 것 같다. 주변의 나무데크 흔적들이 말해주고 있다. 그런대로 주변의 풍광은 볼만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식물들이 다채롭게 자라고 있어 볼거리는 충분했다. 호수 주변집들은 부자들이 사는 동네처럼 보였다.

 

호수를 구경하면서 거의 반대편 쪽에 도달하였는데 그곳에서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짐작건대 평화를 염원하고 전쟁이 없는 세상을 기원하는 페스티벌 같은 것이었다. 학생들은 평화를 상징하는 그림 그리기 어른들은 연설 음악공연 등 다채롭게 행사가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공감하는 부분들이 많이 있었다. 언어는 서로 통하지 않지만 포스터나 전시물들만 봐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최근 의회의원선거에서 수치여사가 이끄는 정당이 다수의 의석을 차지하는 결과가 나온 후라서 민주화의 바람이 부는 것 같은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부디 이 나라에 민주화가 성공하고 고통받는 민중들이 해방의 기쁨을 맛보기를 기원해 본다.

 

깐도지호수를 걸어서 한바뀌 돌고 나니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쉐다곤의 야경을 구경하기 위해 다시 쉐다곤으로 돌아왔다. 모두들 힘들어한다. 낯에는 남쪽문으로 들어왔는데 밤에는 동쪽문으로 들어왔다. 하루 일과를 마친 시민들이 꽃을 손에 들고 기도하러 사원으로 많이들 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동쪽입구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포장마차들이 사원입구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고 입구문을 들어서면 긴 회랑을 따라 사원으로 들어갔다. 미얀마에서는 어떤 사원을 가든지 사원입구에서 신발을 벗는 것이 예의다. 영국식민지시절에는 영국군이 사원을 신발 싣고 들어온 것이 화근이 되어 전쟁까지 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알차게 하루관광을 마치고 너무 힘들어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근처의 거리가 모두시장이어서 맘대로 무엇이든 사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하루를 마감하는 뒤풀이를 하고 내일일정을 이야기하고 어제자지 못한 잠을 채우기 위해 일찍 꿈나라로 여행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