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일 차(2015년 10월 14-15일)
숭덕 피서산장
허베이성(河北省) 청더시(承德市, 승덕시) 솽차오구(双桥区, 双桥区 쌍교구)에 소재하는 현존 중국의 최대 황가 정원으로 청(清) 황제의 여름 궁전이었으며 쑤저우(苏州, 소주)의 줘정위안(拙政园, 졸정원) 및 류원(留园, 유원)과 베이징 이화원(颐和园)과 더불어 사대명원(四大名园)의 하나이며 러허행궁(热河行宫, 热河行宫 열하행궁) 또는 청더이궁(承德离宫, 청더이궁)으로 불린다. 피서산장은 120여 채의 건축물로 구성되었으며 총면적은 5.6㎢, 주위의 담장 둘레는 10㎞에 달한다.
피서산장은 강희(康熙) 42년(1703) 건축을 시작하여 강희, 옹정(雍正), 건륭(乾隆) 3대 황제를 거쳐 89년 만인 1792년 비로소 완공을 보게 되었으며 또한 궁 주위에 시짱, 신장, 몽고 라마교(喇嘛教) 사원의 형식으로 건축한 12개의 사묘군(寺庙群)인 외팔묘(外八庙)도 건축하였다. 피서산장은 청(清) 전반기의 많은 정치, 군사, 민족 및 외교 등 국가대사를 이곳에서 처리하여 베이징의 제2 정치 중심지가 되어왔다.
피서산장은 베이징의 쯔진청(紫禁城, 자금성)과 유사하게 설계되었으며 이름에 걸맞게 약 3℃ 정도 낮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61년 피선산장과 외팔묘는 제1차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으며, 1994년 UNESCO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2007.5 국가 66개 5A급 여유경구의 하나로 지정되었다
14일
피서산장
어제저녁 숙소를 찾느라 헤매고 겨우 찾은 곳이 허름한 아파트형 게스트 하우스 빈아파트를 임대해 관광객에게 숙박비를 챙기는 형태인 것 같다. 편안한 밤은 아니었지만 몸을 맡기고 잠을 청할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고마울 줄이야 ㅡㅡㅡ
아침에 일어나 가까운 곳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오늘의 관광지 피서산장을 찾아 나섰다. 숙소 근처에서 시내버스를 한번 타면 갈 수 있는 곳이다.
중국의 4대 명원 중의 하나라고 한다 졸정원 류원 이화원. 열하행궁 숭덕이궁이라고도 불린다 고한다,
이름 그대로 더위를 피해 머물렀던 휴양지라고는 하나 북경보다 얼마나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장소인지는 모르
겠다. 백성들은 나라님 때문에 괴로웠을 것 같다. 나라님을 위해 행궁을 만들 때 매번 행차할 때마다 동원되었을 것
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변에도 이러한 피서지들이 있다. 어느 섬 어느 댐 주변 권력을 이용해 국가의 예산으로 그들만의 휴양
지가 지금에도 존재한다는 것이 과거의 군주들이나 근대의 독재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아이러
니하게도 그런 곳들이 세월이 흐른 뒤에는 관광지로 바뀌어 국민을 먹여 살리는 수입원이 되고 있다는 것이 머리
를 아프게 한다.
피서산장은 여러 개의 호수와 120여 채의 집 5.6㎢ 의넓이 10여 km의 담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넓은 정원이다. 자금성이라는 어마어마한 궁궐이 있는데도 기온이 3도 낮은 곳으로 피서를 하기 위해 이런 곳이 생겨났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울뿐더러 구경을 하면서도 분통이 터진다. 호수를 파고 각종집을 짓고 거기에 나름 의미를 부여하는 이름을 짓고 못된 군주의 안위와 신상을 위해 해자를 파고 성을 쌓고 한 짓이 얼마나 백성을 괴롭혔는지 짐작이 가는 곳이다.
피서산장초입에서 화장실 찾아가는 중 두 팀으로 쪼개지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간식을 먹고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 걱정했는데 다행히 만날 수 있었다, 너무 넓어 찾아갈 엄두를 못 내고 한 곳에서 이동하지 않고 기다렸는데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얼추한바퀴 돌아보고 시간이 남아 피서산장산구를 둘러보기 위해 전기차가 출발하는 주차장으로 돌아와 매표를 하고 전동차를 탔다. 셔틀전동차를 타고 산구로 올라서면 주요 거점에 10여분씩 시간을 주어 관광할 수 있도록 운행을 하고 있었다 산 위 능선길을 따라 길이 있어 피서산장이 내려다보이는 곳도 있었고 주변 외팔묘풍경명승구가 내려다보이는 곳도 있어 구경하기에 좋은 코스였다. 오늘은 시간이 없어 외팔묘는 내일 구경하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15일 외팔묘
허베이성(河北省) 청더시(承德市, 승덕시)에 위치한 피서산장(避暑山庄) 동북부의 부인사, 보영사, 안원묘,, 보타종승지묘 수상사, 수미복수지묘, 광연사, 및 현재에는 없는 부선사(溥善寺) 등 8개소 장전불교(藏传佛教) 사묘(寺庙)의 총칭으로 청 강희(康熙) 52년(1713)에서 건륭(乾隆) 45년(1780) 기간 건립되었으며 웅장하고 규모가 방대한 청대 전기 건축기술과 건축예술의 정화로 1982년 청더 피서산장외팔묘풍경명승구(承德避暑山庄外八庙风景名胜区)의 구성 부분으로 제1차 국가급풍경명승구로 지정되었으며 1994년 피서산당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청더에서 이틀째 밤을 보내고 어제구경을 다 못한 피서산장밖에 만들어진 건축물들을 구경하러 갔다. 지도상에 보이는 건축물들은 열 곳이나 되는데 시간이 허락지 않아 보타종승지묘와 수미복 지지묘두곳만 선택해서 보고 열차를 타고 북경으로 돌아가는 일정을 계획했다.
보타종승지묘
청나라의 황제가 다른 소수민족과의 화합을 위해 지은 이 절들은 한(漢)족과 몽골족, 티베트족 등 다양한 민족의 문화를 한 몸에 안고 있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티베트 포탈라궁전과 타쉬룬포사원의 웅장함도 볼 수 있고 오대산(五台山) 수상사(殊像寺)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보타종승지묘는 청(淸) 나라 건륭(乾隆) 제가 자신의 60세 생일과 그의 모친인 황태후의 80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1771년에 신축한 사원이다. 건륭제와 황태후의 생일에 즈음해 변두리의 각 소수민족 두령들이 청더에 모였고 건륭제는 여러 민족의 단합을 더욱 든든하게 하기 위해 소수민족들이 신앙하는 티베트 불교사원인 보타종승지묘를 짓게 했다.
1771년 청나라 건륭제가 이곳에서 티베트족의 두령을 만나고 티베트불교의 스님이 이곳에서 경을 강의하게 했다. 그 뒤 이 건물은 집회와 경축행사를 벌이는 장소로 사용된다.
*유리만수탑(琉璃万寿塔)
사원 뒷산언덕에 위치해 있다. 유리만수탑은 항주 육화탑을 모방하여 건설한 팔각 칠 층 녹색유리탑으로서 건륭황제 70 돌생일에 세운 기념탑이다.
수미복수지묘
반선행궁(班禅行宫)이라고도 하며, 청나라 건륭제 때인 1780년에 창건되었다. 이 해에 건륭제는 칠순을 맞이하였는데, 반선(班禅) 액이 덕 니(额尔德尼) 6세는 청더(承德)까지 먼 길을 찾아와서 그의 생일을 축하하기도 하였다. 이에 건륭제는 티베트의 행정소재지인 시가체(日喀则)에 위치한 타쉬룬포 사원(扎什伦布寺:Tashilumpo Monastery)의 형태를 모방한 행궁을 짓게 하였다. '타쉬룬포'는 '행복과 장수, 상서로운 기운(福寿吉祥)'을 의미하며 수미(须弥)는 산을 지칭한다. 여기에서 수미복수지묘 (须弥福寿之庙)라는 명칭이 생겨났으며, 속칭 대행궁(大行宫)이라고도 한다.
이 사원은 당시 티베트 정권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다민족 국가의 통일을 견고히 다지고자 하는 의의를 지닌다. 앞쪽에는 산문(山门), 오공교(五孔桥), 비정(碑亭), 돌사자, 백대(白台) 등이 있는데, 전형적인 한족(汉族)의 양식이다. 중간에는 중심건물인 대홍대(大红台)가 있으며 티베트의 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대홍대의 중앙부와 건물의 지붕에는 금 물고기와 동 기와로 장식되어 있고, 용마루에는 8마리의 금룡(金龙)이 있다. 서쪽의 만법종원전(万法宗源殿)은 반선(班禅)의 침전이며, 뒤쪽의 금 가다(金贺堂)은 반선(班禅)의 제자가 기거하는 장소이다. 사원의 가장 뒤편에는 이 사원의 상징인 유리만수탑(琉璃万寿塔)이 있다.
청더에서 15:00시 열차를 타고 북경동점역에 18:00시에 도착했다. 이 열 차는 특이하게도 침대차 2층객차 일반객차로 조성되어 있었다. 우리는 열차좌석이 없어 3층침대차를 탔다 앉아있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누워서 갈 수밖에 없었다. 2층객실을 구경하려 했는데 출입을 할 수 없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다. 북경동역에 내려 지하철역까지는 한참을 걸어갔다. 이곳에서 지하철 타고 숙소를 찾아갔다. 숙소를 찾고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골목길로 나와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알 수 없는 중국식 음식 ㅡㅡㅡ
승덕에서 북경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북경여행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