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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가노

왜 그럴까? 2025. 1. 22. 21:59

나가노시

여행목적:일본 철도노동자들과 교류 및 관광

여행기간:2015.5.10-15

여행코스:10일-나고야시-미즈호구. 가와쿠초 모토호시자키초. 나가노시-나카고쇼(아이치, 나카고쇼)

               11일-기타 아즈미 군 하쿠바무라. 아즈미노. 나가노(나가노)

               12,13일-마스모토. 나가시노. 아즈미노(나가노)

               13일-마쓰모토 미나미쓰루군후지카와구치코마치. 고후시(나가노, 야마나시)

               14일-후지카와구치코마치-오이시. 가와 그 치. 후나쓰(야마나시)

               15일-신주쿠구. 나리타시(도쿄, 지바현)

               (위지명은 나의 아이폰전화기 사진에 표시된 지명을 참고로 하였음)

 

석 달이 지나 생각을 더듬어 글을 올리려 하니 조금은 막막합니다. 그래도 생각을 더듬어 올려볼 생각입니다.

철도노조와 몇 차례 교류를 가졌던 일본 철도노동자들을 만나러 가는 팀에 합류해 일본을 여행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과거 국철시절부터 활동하던 늙은 노동자들이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과 반성을 하게 되었다. 해고노동자 은퇴노동자 현직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같이 활동하고 있는 단체였다. 다른 나라 노동자들과 연대사업, 핵발전소반대, 환경운동, 비정규직반대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는 서비스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서 열심히 활동하고 계셨다. 한국노동자들과 교류하기 위해 한국어를 공부하는 열정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었고 제주 강정해군기지반대투쟁 에도 연대하러 방문해 주시기도 한 분들이었다. 일본에 사회활동가분들이 대부분 연세가 많다는데 이곳에서 활동하시는 인민의 힘 활동가분들도 70이 넘어 보이신 분들도 같이 활동하고 계셨다. 젊은 친구들은 보이지 않았다. 3박을 하는 동안 불편함이 없이 대접받고 관광안내까지 받으며 푸짐한 식사대접까지 받은 호사를 누리는 여행을 할 수 있었다.이지면을 통해 늦게나마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첫째 날(2015년 5월 10일)

김포공항에서(8:20) 출발해 나고야(10:10)에 도착하는 비행기 편을 이용했다. 공항에는 나고야에서 활동하는 동지들이 마중 나와주어 어려움 없이 첫날일정이 진행되었다. 나고야분들과 같이 점심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나가노로 가는 일정이었다. 식사 후 정거장까지 바래다주고 열차까지 태워주는 호의를 베풀어주셨다.

공항에 마중나옴
전철표
공항에서 전철로 시내로이동
나고야에서교류

 

이해할 수 없는 일본열차표

열차좌석제도가 우리와 거의 비슷한데 일본은 자유석비율이 높은 것 같다.

그린샤, 지정석, 자유석 세 가지의 좌석이 있다. 그린샤는 우리나라의 특실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1 2 3 4 5 6 7 8 9 10
하야테 지정 지정 지정 지정 지정 지정 지정 지정 그린 지정
야마비코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지정 지정 그린 지정
나쓰노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그린 자유
정원 54 100 85 100 75 100 85 100 51 64

 

열차별 량수별에따라 세 가지 좌석유형이 고정되어있지는 않은 것 같다.

어떤 열차는 전좌석이 자유석으로 되어있는 열차도 있다.

나고야에서 나가노행 열차탑승   나고야동지들과 헤어짐
나가노시 차창밖풍경
나가노역에 나가노동지들 마중나옴
이곳에서 3박동안 머물렀다

 

나가노역에 인민의 힘 동지들이 마중 나와주어 이곳에서도 별문제는 없었다. 승용차를 타고 역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사무실이 있었다. 아담한 3층건물이었다. 첫날만남은 저녁식사를 하면서 서로 소개하고 서로 활동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일본말은 할 줄 몰랐지만 이곳의 늙은 노동자들은 우리말을 더듬더듬하실 줄 알았다. 어려웠지만 그나마 의사소통이 되어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 이곳 늙은 노동자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해 주었다.

 

둘째 날(5월 11일)

 

나가노는 18회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도시이다. 오늘은 나가노인근에 있는 가까운 관광지를 안내받아 관광을 하는 날이다. 첫 번째로 나가노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스키점프대를 구경하러 갔다.

18회 동계 올림픽

개최지: 일본 나가노

개최기간: 1998년 2월 7일 ~ 22일

대회규모: 72개국 2,176명(여 787, 남 1,389) 참가

 

하쿠바 가는 길 멀리 북알프스의 산줄기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3000m의산줄기들이 5월인데도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나가노동계올림픽 하쿠바 스키점프대

1998년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스키점프대에 460엔 주고 왕복리프트 타는 비용을 지불하고 출발지점까지 올라 구경할 수 있었다. 이 점프대 구조물안에 있는 올림픽기념관에는 동계올림픽, 패럴림픽에서 수여된 메달을 비롯해 선수들이 사용한 도구와 유니폼 역대올림픽 역사자료들이 일본선수위주로 전시되어 있었다.

 

지난겨울에 왔던 눈이 5월인데도 저렇게 녹지 않고 남아있었다.

 정도는 되야 동계올림픽을 할만하지 평창이 걱정이다.

눈도 없는 나라에서 어찌 스키를 타고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북알프스의 줄기가 북으로 뻗은 곳이 이곳 하쿠바 대표적인 산이름이 시로우마다케, 찌르기다케 2500m에서 3000m 천혜의 스키장조건을 갖춘 곳이라 생각된다. 이곳의 설산풍경을 잘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마을로 이동해 멋진 풍광을 구경할 수 있었다. 이곳에는 그림을 그리는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 화가들이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그림을 그리고 계셨다. 취미 할동을 하시는 모임에서 단체로 오신 것 같다.

 

나가노현 아즈미노시 대왕고추냉이농장

수경재배를 한다네요 저것이 어떻게 고추냉이가 되는지 긍금하네요. 자료를 찾아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재배를 하고 있네요. 습하고 그늘진 곳에서 잘 자란다네요. 일본에서는 시즈오카가 원산지라고 하네요. 현장에서 본바로는 시냇물이 흐르는 곳에 심어 맑은 물이 밭고랑으로 흘러가는 것을 볼 수 있고 인삼재배하는것처럽 지붕을 검은 그물천으로 온통 덮어진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아래사진의 뿌리줄기를 강판에 갈면 생고추냉이(고추냉이)가 되는 것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나가노로 돌아와 마쯔시로 대본영을 답사했다

 

마쯔시로 대본영이란

마쯔시로 대본영은 아시아태평양전쟁 말기에 나가노현 나가노시 마쯔시로 조(長野縣長野市松代町)에 있는 3개의 산을 중심으로 선광사(善光寺) 주변일대에 분산해서 지어진 지하군사 시설군입니다.
일본의 패색이 짙어진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4년 봄, 육군은 본토결전(전 국민의 힘을 투입해서 일본 본토에서 전쟁을 하며 연합군에 일격을 함으로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건으로 전쟁을 끝내려고 한 작전)의 거점으로 대본영, 천황일족, 정부, NHK 등 나라의 주요 기관을 동경에서 나가노로 옮기는 계획을 극비리에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전의 지휘중추를 지키기 위한 은신처로 마쯔시로 대본영이 계획되었습니다. 연합군에서 국체호지(천황중심의 국가체제를 지킬 것)만은 관철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공사기간은 1944년 11월부터 패전까지 약 9개월, 종전 때는 80% 정도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지하호의 길은 마쯔시로에 있는 5.9km의 조산지하호를 비롯하며 2.6km, 1.9km 등 다양합니다.

공사에 동원된 한반도에서의 노동자
지하호 공사가 전성기였던 1945년 4월경에는 일본인/한국인 전체로 약 1만 명이 공사에 투입됐다고 합니다. 그중에 한국인은 6,500명 정도(정확한 숫자는 아직 불명확함)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일본 각지의 공사현장에서 옮겨진 한국인 노동자나 일본으로 강제연행된 사람들입니다. 일본사람에 관해서는 비밀을 지키기 위해 지하호 근처에 사는 주민들을 강제이주 시키며 작업에는 군대를 비롯하며 지역 인근에서 단기적으로 동원된 성인남성, 학생, 아동 등 3,000명이 종사했습니다.
지하호 공사는 초반에는 하루 3교대였으며 그 후 2교대의 12시간 노동으로 바뀌었습니다. 눈이 많고 추운 나가노현의 습지대에 세워진 허술한 숙소 중에는 삼각 숙사라는 지붕이 땅까지 이르는 것도 있었습니다. 의류나 신발은 지급받기가 힘들고 식사는 양도 적고 영양이 부족했습니다. 엄격한 감시 하에서 도망을 시도하면 본보기로 형벌이 가해졌습니다.
지하호를 파는 작업은 다이너마이트로 바위산을 파게 해 그 바위나 돌을 광차 등을 이용해서 인해전술로 끌어냈습니다. 그것을 상공에서 안 보이도록 나무나 잎으로 덮었습니다. 다이너마이트 폭파 등의 위험한 작업에는 한국인을 시켰습니다. 한국인 희생자는 공사로 인한 사고와 질병, 영양실조 등이 원인이었을 것이지만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습니다. 적어도 40명이라는 추정으로부터 500-600명까지 다양합니다. 그런 한국인 노동자 중에는 전쟁 후에도 마쯔시로에 남아서 사신 고 최소암 씨(경남출신)와 같이 많은 증언을 남겨 사실을 전하신 분도 계십니다.

보존운동 경위
공사는 많은 희생을 낳아 전체의 80%를 완성한 단계에서 1945년 8월 15일 종전을 맞이했으며 마쯔시로는 “환영의 대본영”이 되었습니다. 그 후 40년 동안 지하호는 사람들 기억으로부터 잊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1985년, 그 지방의 시노노이아사히 고등학교 학생들이 지하호를 전쟁의 비참함과 평화의 귀중함을 후세에 전하기 위한 유적으로 보존하자는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은 수학여행으로 간 오키나와에서 동굴을 본 것을 계기로 고향의 역사를 재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발발한 오키나와전의 주요 임무는 본토결전의 준비, 즉 마쯔시로 대본영이 완성되기 전까지 방어 태세를 유지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 후 그 활동은 큰 시민운동이 되어 1999년엔 지하호의 일부 500m가 나가노시에 의해 일반에게 공개되었습니다. 작년에는 12만 2천 명이 찾아와 그중에 2만 5천 명이 보존을 추진하는 모임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회원은 현재 600명이며 작년에는 한국어판 팸플릿도 만들어졌습니다. 한 자원봉사자는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일본 사람들, 특히 아무 죄도 책임도 없는 사람들의 생명과 행복을 앗아가는 전쟁의 본질을 지하호건설의 경위와 실태에서 깊이 배우고 평화의 귀중함을 호소해 나가고 싶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자료)

전후 50년을 즈음하여 마쯔시로 대본영건설에 강제연행되어서 가혹한 노동을 강요당하여 희생된 수많은 조선인을 추모하고 과거에 전쟁침략가해를 깊이 반성하며 우호친선과 항구평화를 기원하여 이 비를 세웁니다.   지하갱도를 둘러보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나 싶었다. 패전이 짙은 상황에서 끝까지 발버둥 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한편으로는 불쌍해 보이기도 했다. 백성들이야 어떻게 되든지 끝까지 옥쇄를 해보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보통사람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제저녁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버지의 강제징용사실을 이야기했더니 할아버지들께서 일어서시더니 허리를 90도 숙여 사죄의 예를 표하셨다. 오늘 이곳 대본영을 설명하시면서 조선인징용사실을 이야기하시면서 다시 한번 허리 숙여 사죄의 예를 표해주셨다. 역사의 사실들이 머릿속에서 뒤엉켜버렸다. 정치하는 인간들은 왜 솔직하지 못하고 반성하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짓들을 할까. 오늘 이분들과 이틀째 보내면서 정말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분들처럼 모두가 한마음이라면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저의마음을 동하게 해 주시고 생각하게 해 주시고 마음을 포근하게 해 주셔서요.

마쯔시로 마을에있는 무사의집 구경

 

대본영을 구경하고 시간이남아 온천을 갈까 하다 싫다는 동료들이 있어 젠코우지를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오려 하였으나 문제가 생겼다. 일본에서 사용하려고 한국에서 사 왔던 전화기칩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도코모통신사 대리점을 찾아 해결해보려 하였으나 해결되지 않아 그곳에서 시간을 다 허비하고 나고야역 북광장에서 사람구경하다 숙소로 돌아오는 사건이 있었다. 오늘일정은 여기서 마쳤다.

 

세째날(5월 12일)

오늘여행은 안내 없이 우리끼리 찾아가는 여행이다. 북알프스 상고지라는 곳에 가서 북알프스를 구경하고 주변호수 골짜기를 트레킹 하고 돌아올 계획이다. 북알프스를 오르지 못함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다음을 기약하며 ---

나가노역에서( 67분 소요) 열차를 타고 마쓰모토에 도착 SAWANDOGODO행(30여 분소요)으로 환승 거기서 가미코지(상고지)까지 버스(60분 소요)로 이동하는 코스다.

 

역사의 홈을 자세히 보면 일본철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일본도 과거에는 저상홈열차들이 운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홈의 빨간 벽돌이 증명해주고 있다. 그 벽돌 위에 덧붙여 고상홈을 올려서 만든 흔적을 보고 우리라면 어떻게 했을까. 저것을 확 밀어버리고 콘크리트로 멋들어지게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연결하고 덧대고 홈의 모습은 누더기옷을 상상케 하지만 안전만은 세계최고라는 것이 과연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시설들이었다.

 

직업의식이 발동해 기관사의 운전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열차의 맨 앞쪽으로 왔는데 운전실을 볼 수 있게 투명유리로 개방되어 있었다. 한참을 구경하고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고 하면서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곡선이 심한 산길을 잘도 달렸다. 개량되기 전 경춘선모습과 흡사했다.

시골간이역
차창밖 멀리 설산의모습들이 아름답다
환승중 역무원과 대화

 

상고지라인은 마스모토에서 종착역인 사완도까지 운행하는 열차이다. 이 열 차는 3량으로 기관사가 운전도 하고 승객안내도하고 차표정리도 하고 1인 3역을 하며 운행하는 열차였다. 신기해 보이기도 하고 우리의 지방선 열차도 멀지 않아 저런 상황이 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종착역에 도착 버스를 타고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버스는 왕복 3400엔 가는 코스는 산속길을 계속 올라가는 길이다. 가는 길목마다 온천과 숙박시설들이 잘 갖춰진 곳이다. 가을여행이면 단풍을 만끽할 수 있는 코스가 될 것 같다. 계곡을 따라 오르는데 몇 개의 댐을 지나고 마을도 지나고 계곡의 풍경은 원시림으로 뒤덮이고 고목들이 나레비서서 관광객들을 반겨주고 있었다.

 

버스 마지막 주차장은 한참을 더 올라가야 한다. 보통은 이곳에서 내려 호안 쪽으로 가 경치를 구경하면서 트레킹은 이곳 호수에서부터 시작해 우측호안을 따라가다 다리를 건너 좌측계곡길을 걸어 올라갈 계획이다. 호수와 계곡 3000m의 고도를 자랑하는 북알프스와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앞에바라보이는 설산의 모습이 너무 장관이었다. 올라보지 못하고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안타까웠다.

 

이곳 다리까지 올라와 다리를 건너 주차장까지 내려가는 코스를 선택해 걸었다 걷는 내내 주변의 경치들이 너무 멋있고 아름답고 오월인데도 야생화들이 많이 피어있어 감상할 수 있었다. 하루일정으로 이곳 상고지 주변을 트레킹 하고 내려가기는 너무 아쉬움이 많았었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꿈을 가져본다.

온천에서 온천욕을 하고 싶어 온천을 찾아내려 왔는데 입장시간이 지났다 아쉬움을 달래려 온천 앞 한편에 족욕을 할 수 있는 시설이 있어 잠깐 족욕으로 피로를 풀 수 있었다. 오후부터 가랑비가 오락가락한다. 높은 산에는 안개구름이 덮여 더욱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제 버스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에 올 수 있기를 기약해 보면 지친 몸을 버스에 실었다. 구불구불 산길을 버스는 잘도내려간다.

 

나가노로 돌아가는 중 환승역인 마쓰모토역에서 저녁을 먹고 열차를 탔다.

마쓰모토역의 특이한 안내멘트를 들으며 열차는 나가노를 향해 출발했다.

마-쓰-모-토오오오오오 ㅇ ㅇ ㅇ ----

 

나가노로 돌아와 나가노의 마지막밤을 맞이하였다. 어쩜 내 생애 일본의 북알프스를 올라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극한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어쩔 수 없다 이번여행은 산을 오르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맛보기로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움과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일아침이면 젠코지 사원을 구경하고 후지산이 있는 야마나시현으로 이동할 것이다. 3일 동안의 교류와 관광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준 만남이었고 일본을 다시 한번 생각게 하는 교류의 장이었다. 할아버지들과 만나 아버지의 일제징용을 이야기했을 때, 마쯔시로 대본영 지하갱도소개를 하면서 조선인징용자들의 희생을  진심으로 허리 숙여 사과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진심을 느낄 수 있었고 앞으로 양국의 젊은 세대들이 어떻게 처세를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우는 기회가 되었다.

나가노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