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5일
오늘일정은 아침일직 숙소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한치러우 공원을 둘러보고 류공도로 들어가 구경 후 청도를 거처 제남까지 들어갈 계획이다.
웨이하이
항구는 청나라 때 북양함대의 기지였다. 1895년에 일본군과 청나라군 사이에 웨이하이 전투가 벌어졌다.
1895년에 일본군은 철수했다.
러시아가 1898년 3월에 반대편 해안에 위치한 뤼순을 조차지로 삼은 후에 영국은 러시아가 뤼순에 머무는 것을 조건으로 웨이하이를 조치했다. 1905년에 일본이 러시아로부터 뤼순 항을 넘겨받자 영국은 일본이 뤼순에 머무는 것을 조건으로 조차지를 유지했다. 그래서 도시는 영국이 1898년부터 1930년 10월 1일까지 조차한 "웨이하이웨이"로 불리는 영토의 일부가 되었다. 이곳은 영국 해군의 여름 주둔지였다. 극동아시아의 왕립 해군은 중국 해안에 두 개의 주요 항구가 있는데 하나는 남쪽의 홍콩이고 또 하나는 북쪽의 웨이하이였다.
웨이하이가 조차지가 되었을 때 왕립 해군의 고위 해군 장교가 영토를 관할했다. 1899년에 관할이 군대에서 런던 전쟁 사무국이 임명한 시민 총독으로 바뀌었다. 영토 수비대는 200명의 영국군과 영국인 장교가 지휘하는 중국인 군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1901년에 이곳을 요새화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관할은 영국 식민지 사무국으로 바뀌었다. 1902년에 영토를 운영하기 위해 시민 위원을 임명했고 1903년에 중국인 군대는 해산되었다. 웨이하이의 마지막 영국 총독은 레지날드 존스턴이었다. 이곳은 청나라 이후에 들어선 중화민국 때 반환된 후에 특별행정구가 되었다.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진 후에 웨이하이웨이 시는 웨이하이 시로 이름이 바뀌었다.
숙소에서 아침 일찍 나서 환취루우 누각이 있는 공원에 갔는데 문이 열리지 않아 주변에서 구경하고 걸어서 유공도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갔다.
류궁다오(刘公岛)
웨이하이만 해안선에서 5㎞ 떨어진 곳에 있는 섬인 류궁다오(刘公岛)는 명대에 왜적에 대비한 요새가 세워져 있었다. 후에 청나라 정부가 류궁다오를 해군기지로 만들었고 1894년에 일본에 참패하고 난 후 이 섬은 일본군 손에 넘어가 3년간 지배당했다. 1898년에는 영국이 이 섬을 차지하기 위해 침입해 들어와 32년간 지배했다. 이 시기에 영국인들은 학교, 교회, 찻집 따위를 지어 이 섬을 영국 해군의 여름 휴양지로 바꾸어놓았다.
1948년에는 장제스와 그의 군대가 들어왔고 곧이어 공산군이 들어오는 등 류궁다오는 갖은 수모를 겪고 지배를 당한 슬픈 내력을 간직한 섬이다. 페리터미널 왼쪽에 있는 갑오전쟁박물관은 섬 최대의 볼거리. 박물관 건물은 북양함대 사령관이 쓰던 사무실을 개조한 것으로, 전쟁 전후의 사진이나 공예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 밖에도 류궁다오박람원, 류궁다오 국가삼림이 조성되어 있고 북양해군 충혼비, 류궁천(刘公泉), 옛 포대 등이 있다.
환취루우 주변을 구경하고 걸어서 곧장 바닷가로 걸어 내려와 우측으로 조금 가면 유공도 가는 선착장이 나온다. 첫배를 타려고 아침 일찍 갔는데 우리의 정보보다 더 늦은 8:00시 배가 첫배였다. 왕복선편과 입장권이 포함된 138위엔짜리 표를 구입하고 걸어서 구경할 맘으로 배에 올라탔다. 입장권은 배편 입장료 케이블카 유람선 포함여부에 따라 138원에서 308원까지 다양한 입장표가 있다. 20여분이 걸려 유공도에 도착했다.
이곳은 전략적 요충지라서 명나라 이후부터 쭉 전란에 휘둘린 장소였던 것이다. 역사적인 아픔을 안고 있는 섬이고 자연경관은 그다지 구경할 거리는 없는 것으로 평가하고 싶은 섬이다. 명청 이후 근대사를 거치면서 일본과 영국 등이 힘을 겨루는 전쟁터가 되었던 곳이기도 했다. 여기저기에 전쟁의 흔적들 기념탑 박물관들이 자리 잡고 있는 섬이다.
이곳에 동물원이 왜 생겼는지는 모르겠다.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전쟁기념물로만은 조금 부족한 면을 채워주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섬의 산정상에 충혼탑과 갑오전쟁 때 사용했던 포대가 있어 걸어서 올라 보기로 하고 올라가는 길목에 판다를 볼 수 있는 동물원이 있었다. 이곳도 구경하려면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 이른 아침시간이라 직원이 없어 무료로 구경할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대부분 근무자들이 육지에서 첫배를 타고 출근하는 것 같았다.
선착장에서 산을 바라보고 우리는 좌측으로 올랐는데 우측에 케이블카를 타고 산정상을 오를 수 있는 시설이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 머리 위를 통과하는 케이블카를 바라보면서 걸어서 내려왔다. 지금도 류공도는 곳곳에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는 주둔지를 볼 수 있고 훈련하는 군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의 조상님들이 섬겼던 미신적인 것을 깊게 공부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처럼 중국의 도교에 대해서도 모르기 때문에 기념물이나 조형물 사원에 모셔져 있는 상들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도가사상은 유교사상과 더불어 2,000년 동안 중국과 그 주변국의 생활과 사상을 형성해 온 중국 고유의 종교철학이다. 도가사상의 특징은 실용주의적인 유교와는 달리 현실세계에 대한 신비주의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이론에 있다. 도가에 대한 엄격한 정의에는 3가지 측면이 있다. 즉 도가철학은 〈노자 老子〉 또는 〈도덕경〉, 〈장자 莊子〉·〈열자 列子〉 등과 같은 경전의 사상, '도'를 숭배하는 종교로서의 도교, 도가를 모두 포함한다. 도가사상은 중국문화의 광범위한 범위에 걸쳐 스며 있다. 종교로서 도교는 국교인 유교와 비정형적인 민간신앙의 중간에 위치한다. 도가사상과 도교는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은 아시아의 한국·일본·베트남 등지로 퍼져나갔다.
갑오전쟁박물관
갑오전쟁박물관이 두 곳이 있다. 위사진은 최근에 자료와 유물들을 모아 인위적으로 만든 박물관이고 선착장에서 섬을 바라보고 좌측에 있는 박물관은 옛 군인들이 주둔했던 북양함대 사령관이 쓰던 사무실을 그대로 유지보존하여 박물관을 만든 곳이다. 갑오전쟁박물관을 구경하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패전을 인정하면서 이 패전을 역사적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우리말로 설명되어 있는 부분이다..
갑오전쟁
*청일 전쟁(淸日戰爭)은 청나라와 일본 제국이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1894년 7월 25일부터 1895년 4월까지 벌인 전쟁이다. 중국에서는 갑오년에 일어났다고 하여 중일갑오전쟁( 中日甲午战争), 일본에서는 일청전쟁(日清戦争), 서양에서는 제1차 중일 전쟁(First Sino-Japanese War)이라고도 부른다.
#. 조선은 일본의 강요로 1876년 2월 27일(음력 2월 3일) 강화도 조약을 체결.
#. 수구파는 1882년 임오군란으로 청나라에서 파견한 위안스카이의 도움으로 재집권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개화파뿐만 아니라 일본 영사관이 불타고 영사관 위병과 민간인 중에 사상자가 나왔다. 이로부터 청나라와 일본 군대 사이에 전투가 발생하였고, 결국 1885년 톈진 조약이 체결되었다
#. 북양함대는 리훙장이
#. 청나라의 요청으로 1895년 4월 17일 청나라와 일본 사이에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되었다
류공도를 구경하고 나와(11:05) 청도로 가기 위해 시내버스를 타고 고속철도를 탈 수 있는 웨이하이 북점으로 갔다. 청도-제남-태산 열차표는 엔타이역에서 왕복으로 예매를 해두었고 청도는 버스를 타고 갈 계획이었는데 어제저녁 한국인식당에서 고속전철을 타고 갈 수 있다는 정보를 듣고 가보기로 했다. 일반철도도 있는데 고속버스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리고 웨이하이 고속전철에 관한 정보를 몰라서 고속버스로 갈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정거장에 도착해 물어보니 열차표가 없단다.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런데 다행히도 웨이하이북점 같은 건물에 기차점이 같이 있어 그곳으로 가서 청도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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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하이 북점에서 버스를 타고(14:25) 청도기차점에(18:25) 도착해 청도역으로 가려고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 아저씨가 말썽을 부렸다. 호객을 하면서부터 60위엔을 달라하길래 손짓발짓 다해서 미터기로 안 가면 안 탄다고 했더니 미터기를 꺾고 가겠다고 타라 한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길치였다면 분명히 당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청도 구역이 아닌 새로 생긴 고속전철역으로 가려고 고가를 올라타려 하기에 소리를 지르며 차를 세웠다. 상황은 차선을 바꿀 수 없는 위치였다. 도로 한가운데 내리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30위엔을 내고 내리란다. 내리지 않고 버티면서 유턴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다시 기차점 앞으로와 30위엔 달라는 것을 인상 쓰면서 5위엔 만 주고 내렸다. 청도역에서 제남행 열차시간이 19:56분 차다. 밥 먹고 열차를 타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친절한 택시기사를 만나 샛길을 가로질러 예상시간보다 빨리 청도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택시에서 내려 청도역 앞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곳에서 또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저는 국수와 만두를 시켰고 친구는 쌀밥에 닭다리와 소스가 뿌려진 그림을 보고 시켰는데 소스가 없이 쌀밥에 닭다리하나만 덜렁 얹힌 음식이 나왔다. 주인을 불러 손짓발짓으로 그림을 가리키며 왜 틀리냐고 했더니 빙긋이 웃기만 한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화낼 수도 없고 웃으면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열차표를 살 때 외국인은 여권을 제시해야 한다.
열차표에는 여권번호와 이름자가 적혀있다.
도착역 도착시간이 적혀있지 않아 불편했다.
청도-제남 갈 때와 올 때 가격이 다른 이유를 모르겠다.
승무원에게 사진도 한 장 찍어 달라하고 같이 셀카도 한 장 찍고 열차여행은 시작되었다. 고속열차라서 300k/h이상 달리는 열차인 줄 알았는데 객실 내 디지털속도계를 확인해 보니 200k/h를 넘어가지 않고 최고속도는 195k/h정도에서 오르락내리락 지시하고 있었다. 정거장은 구역시설을 그대로 이용해서인지 정거장 진출입시는 아주 저속으로 진출입을 하고 있었다. 본선을 달릴 때는 승차감이 아주 좋았다.
제남역에 도착해(22:50) 예약된 숙소를 찾느라 헤매기를 한 시간여 예약호텔 이름이 인터넷에 올라있는 이름(MOTEL168)과 현지 간판이 다르게 표기되어 있어 헤맬 수밖에 없었다. 예약 시 지도에서는 역바로 옆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확인했는데 실제가 보니 동일명의 호텔이 없는 것이었다. 이 집 저 집을 들어가서 물어보고 또 물어봐도 아니란다. 한 시간여를 정거장 주변을 헤매다 처음 들어간 골목에서 안 물어본 곳이 한 군데 있었는데 그 집에 들어가서 물어봤더니 바로 예약한 호텔이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화를 내야 하는지 또 웃고 말았다.
오늘여행 끝 ㅎ ㅎ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