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항저우-황산-쑤저우-상하이
여행기간:2014.10.27-11.4 8박 9일
출국:10월 27일 8:55 인천공항-09:50 상하이 푸둥공항
입국:11월 04일 14:25 상하이푸둥공항-17:10 인천공항
여행경로
중국인들이 강남지역을 여행할 때 공식처럼 하는 말이 화이둥우스라는데 화이둥우스는 상하이, 항저우,난징, 쑤저우, 우시 5개 도시를 말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난징대신 황산을 여행할 계획이며, 우시대신 강남 6대 수향마을 중 한 곳을 넣는 방향을 고려함.
동선과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상하이-항저우-황산-쑤저우-상하이 순으로 여행경로를 잡고 주말을 피하기 위해 10월 30일을 황산에서 숙박하는 일정으로 계획을 세웠다.
일정
10.27일 상하이 푸둥공항도착, 열차로 항저우로 곧바로 이동 관광 숙박
10.28일 항저우 관광 숙박
10.29일 아침 버스로 황산- 툰시로 이동, 툰시관광 숙박
10.30일 황산등산 산중숙박
10.31일 황산구경, 야간열차로 황산-쑤저우 이동
11.01일 쑤저우관광 숙박
11.02일 수향마을, 쑤저우 관광 숙박
11.03일 버스로 쑤저우-상하이 이동 상하이 관광 숙박(열차이동계획이었으나 열차표 없어 버스이동)
11.04일 오전 상하이 관광, 푸둥공항이동 귀국
최소비용으로 배낭여행 길거리에서 사 먹고 바람과 비만 피할 수 있으면 아무 곳에서나 잔다.
상하이-항저우
10월 27일
인천공항에서 7:00시에 만나 수속을 마치고 상하이 푸둥공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번여행은 지남번 윈난 성 배낭여행 후 두 번째 배낭여행이다. 기대되고 설레는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 이번 여행 때도 똑같은 마음이다. 여행멤버는 지난번여행 때 멤버 중 한 분이 교체되었다.
스쳐 지나가는 상하이
푸동공항에 도착해 상하이 시내는 구경도 못하고 시내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바닷가공항에서 2호선 지하철을 타고 상하이 홍차오역으로 이동했다. 상하이 지하철 2호선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중간에 한번 환승을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홍차오역에 도착해 항저우 가는 15:35분 차표를 예매하고 역대합실 구석에서 간식으로 점심을 때웠다.
상하이 홍차오역
홍차오역의 대합실크기에 입이 벌어졌다 다물어지지 않는다.
1층은 플랫폼이고 2층은 선로를 덮어 대합실로 만들었는데 좌우양쪽으로 개표구가 설치되어 있다.
도착승객은 2층으로 올라오는 것이 아니고 지하통로를 통해 지하철이나 버스 타는 곳으로 나가게 되어있다.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 어디를 가더라도 짐검색대를 통과하게 되어있다. 특히 기차역은 대합실로 들어올 때 열차를 타러 개표할 때 두 번의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지난번 쿤밍역에서는 아예 대합실과 열차표 파는 곳이 격리되어 있어 열차표를 소지한 사람만이 대합실로 들어갈 수 있게 통제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살벌한 분위기로 느껴졌는데 몇 번 겪다 보니 이런 일들이 일상으로 느껴지게 되었다.
상하이-항저우 열차 타기
중국의 열차 좌석은 몇 종류가 있다. 잉쭤-딱딱한 좌석, 롼쭤-푹신한 좌석, 잉워-딱딱한 침대, 란워-푹신한 침대 그리고 침대는 3단으로 되어있는 열차가 있는데 1층은 그런대로 앉아있을 수 있지만 2층은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 하고 3층은 고개를 들 수 없어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침대칸이 있다, 이번열차의 좌석처럼 침대칸을 아래층만 6인용 좌석으로 이용하는 열차도 있다. 좌석의 종류에 따라 가격이 다르게 책정되어 있다. 외국인은 열차표를 예매할 때 여권을 필히 제시해야 하고 열차표에 여권번호와 이름자가 기록되어 있다. 자동발매기는 외국인은 사용할 수가 없다.
항저우역
항저우역에 도착해 개찰구를 빠져나오자마자 숙소 삐끼아줌마들이 달라붙는다. 숙박업소 팸플릿을 보여주며 가격을 흥정한다. 끈질기게 따라붙는 아줌마와 몇 차례 흥정을 했지만 가격이 맞지 않아 거절했는데 계속 따라붙는다. 할 듯 말 듯 여운을 남긴 체 흥정이 계속되어 숙소를 보고 결정하겠다고 하니 봉고차를 태운다. 변속도 안 되는 봉고차를 타고 숙소 앞에 내려 숙소를 확인했는데 그런대로 그 가격대비 쓸만했다. 리모델링 작업을 하고 있는 주점이었고 우리가 구경할 서호에서 가까워 조금 시끄럽고 지저분하지만 가격대비 괜찮았다. 항저우에서 묵을 숙소는 이렇게 결정되었다.
항저우
계획:27일 밤부터 29일 아침 황산 툰시로 떠나기 전까지가 항저우의 일정이다. 27일 당일 서호 동쪽으로 돌아 보석산에 올라 야경을 구경하고 서쪽으로 돌아와 자고 28일 오전 서호를 자전거로 한 바퀴 구경하고 용정촌 차밭으로 가 차 한잔 마시고 무림문부두로 이동 유람선을 타고 공신교까지 갔다가 되돌아와 오산로 하방가를 구경하고 29일 아침에 황산으로 가는 일정이었는데 일정을 조금 변경해 소화할 수밖에 없었다.
실전:27일 계획된 열차시간보다 한 시간 늦은 차표를 예매했고 숙소 잡는 과정에서 시간을 많이 까먹어 일찍 밤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 식사를 하고 서호 동쪽을 걸어 돌아 평호추월, 고산, 북산로까지 구경하고 택시로 숙소로 돌아왔다. 28일 아침 자전거를 포기하고 어제저녁 걸었던 북산로까지 버스로 이동 이어서 서호 서쪽을 구경하고 완전한 도보 한 바퀴를 마치고 용정촌으로 버스이동 용정촌에서 차 한잔 마시고 구계 쪽 채탄강변까지 걸어 나와 버스를 타고 무림문 부두에 도착 유람선을 타고 공신교까지가 날이 어두워져 대운하 박물관 보기를 포기하고 무림문으로 돌아와 숙소 근처에 있는 오산루와 하방가를 구경하고 꿈나라로, 다음날아침 툰시로 가는 버스터미널을 찾아 버스 타고 이동 여기까지가 항저우에서 일정이었다.
동파육
오늘하루 정상적인 식사는 기내식 한 끼였다. 아침에 서둘러 나오느라 건너뛰고 기내식 먹고 시차로 낯이 한 시간 더 길어져 시장끼가 더 느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저녁은 맛있는 음식으로 먹기로 작정하고 항주의 대표음식 동파육과 서호초어를 먹어보기로 했다. 또한 이곳의 대표음식은 거지닭과 용정새우가 있다고 한다. 항저우의 특산물로는 국화차, 왕성기 부채, 정소천 가위, 실크, 자수가 유명하며 유명주로는 샤오싱주와 삼백주가 유명하다.
동파육:기대를 하고 기다리고 있다 맛을 보았는데 내 아내가 월계수잎과 커피를 넣어 삶은 돼지고기 맛과 유사한 맛이었다. 유명 요릿집에서는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대 이하의 맛이었다. 서호를 축조했다는 소동파와 연관이 있다는데--- 서호를 성공적으로 축조하고 돼지 300마리를 노동자들에게 하사했는데 그때 요리해 먹었던 방식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서호
항저우의 대표적인 관광지로는 서호가 있고 첸탄강, 징항대운하, 송성가무쇼가 있다.
박물관으로는 저장성 박물관, 중국대운하 박물관, 항저우중국차엽 박물관이 있다.
서호에는 보는 위치와 계절 기후조건에 따라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할 수 있는데 이름하여 남송시대 화단의 선비들이 선정한 구서호 10경 1987년 항주일보가 선정한 신서호 10경 제9회 중국 항주서호 박람회 개막식에서 항주시위 왕국평 서기가 선정한 평강서호 10경 이름하여 서호 30 경이라고 부르는 명소를 가지고 있는 호수이다. 이번 관광에서 30경 중 몇 곳이나 찾아볼 수 있을는지 사뭇 기대되는 여행이다.
피곤해 반바퀴를 걸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쉬엄쉬엄 돌아 반바퀴를 돌았다. 밤 10시가 다되었다. 운 좋게 분수쑈도 볼 수 있었다. 호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주변의. 야경은 볼만했지만 나무에 조명등을 설치한 풍경은 마음이 썩 즐겁지 못했다. 밤이면 나무도 자야 하는데 인간들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 나무에 조명등을 설치한 것은 생각해 볼 문제라고 생각된다. 북산로에서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10월 28일
자전거로 서호 한 바퀴를 계획했으나 이를 포기하고 골목길에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어제 못다 걸은 반바퀴를 걷기로 했다. 항주는 공용자전거 시설이 잘되어있는 도시다. 신분증을 제시하고 300위엔의 보증금을 내고 보증금영수증과 카드를 받아 자전거를 타면 된다. 한 시간은 무료이고 시간당 20-30위엔이라고 하는데 정확은 금액은 타보지 않아 모르겠다. 사설 자전거 대여점도 비슷한 절차를 거쳐서 빌려 타면 된다.
플라타너스 버짐나뭇과의 플라타너스 속에 속한 식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나무껍질은 흰 얼룩이 져 있고 세로로 갈라진다. 잎은 손바닥 모양이고, 봄에 엷은 황록색의 작은 꽃이 핀다. 자라는 힘이 강하고 옮겨 심어도 잘 자라기 때문에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버즘나무, 양버즘나무, 단풍버즘나무 따위를 심고 있다. 원산지가 유럽 남동부에서 인도까지인 버즘나무는 키가 30m에 달하며 거대하고 땅딸막한 줄기를 가지는데, 때때로 둘레가 약 10m에 이르기도 한다. 이번 여행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나무가 플라타너스 가로수다. 서호 주변의 가로수가 거의 다 플라타너스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낯설지가 않다. 우리나라에는 조치원-청주 간 국도가 플라타너스 터널도로로 유명한데 이곳은 거의 모든 도로가 플라타너스 터널이다.
악비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1126년에 유목민족인 여진족이 세운 금(金)의 군대가 화북(華北) 지방을 침입하여 북송의 수도인 카이펑[開封]을 점령했다. 금의 남하가 계속되고 있던 1125(또는 1126)년에 휘종(徽宗)은 태자였던 흠종(欽宗:1125/26~27 재위)에게 양위했다. 그러나 곧이어 휘종과 흠종은 금의 포로가 되었고 북송은 멸망했다. 그 후 휘종의 또 다른 아들이었던 고종(高宗:1127~62/63 재위)이 양쯔강[揚子江] 이남지방에서 나라를 재건했는데, 이를 남송이라고 부른다.
고종과 함께 남쪽으로 퇴각한 악비는 정원장군절도사(靖遠將軍節度使), 무승(武勝)·정국(定國) 2진(鎭)의 절도사에 제수되었다. 그는 구릉지가 많은 강남지역의 지리적인 이점을 잘 이용하여 금의 기마공격을 막았다. 1136년 선무부사(宣撫副使), 1137년 선무사에 임명되어 양쯔강과 화이허 강[淮河] 남부 사이에 위치한 중원(中原) 지역의 회복에 진력했으며, 이로써 금이 점령했던 일부 지역을 수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북진하여 잃어버렸던 모든 영토를 수복하고자 했던 그의 노력은 주화파(主和派)의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주화파의 우두머리였던 재상 진회(秦檜)는 더 이상의 전쟁 수행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고종의 신임을 받고 있던 진회 등의 주화파는 조정에서 더욱 세력을 확대하여 1141년에는 주전파(主戰派)인 악비를 옥에 가두고 처형했다. 그리고 북방의 영토를 포기하고 금을 섬기며 조공을 바친다는 내용의 굴욕적인 화의(和議)를 맺었다. 이후 악비는 후세의 위대한 영웅으로 추앙되었고, 악비를 모함한 진회는 '반역자'라는 오명을 남기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악비는 외세의 침략에 대항하여 투쟁한 구국의 영웅으로 칭송되고 있다.(백과사전)
天日:하늘은 내 마음을 알 것이다
還我河山:나에게 강산을 돌려달라
악비묘를 입장료 때문에 밖에서 구경하고 지하도를 지나 3km의 소제를 걷기 시작했다. 좌우로 호수의 풍경이 시시각각으로 변해왔다. 이곳 서호는 두 번째 여행이다. 첫 번째 여행은 패키지여행을 따라왔는데 호수에서 유람선 타고 돌아가기 바빴었다. 한가롭게 걸을 수 있는 여행이 무척이나 좋았다. 힘은 들지만 맘에 쏙 드는 여행이었다.
백제, 소제
호수가의 수양버들의 흐드러진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호수가의 낚시꾼의 모습에서 평온을 되찾기도 한다. 백거이가 축조항 백제 소동파가축조한 소제 두 둑길을 걷다 보면 서호가 축조된 유래에 대해서 알 것도 같은데 감이 오지 않는다. 수로의 일부였다는 이야기, 퇴적물이 많이 쌓여 파내고 홍수를 막았다는 이야기 도대체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무림부두에서 연결되어 채탄강으로 연결되었던 수로라는 것인지 좀 더 자료를 뒤져봐야 이해가 될 것 같다
유람선
유람선을 타고 소영주섬에 내려 삼담인월을 구경하고 잘 가꿔진 정원을 구경하고 나왔다.
호수 안의 3개의 섬은 호심정(湖心亭) 완공돈(阮公敦) 소영주섬[小瀛洲島:샤오잉 정부]이며, 모두 인공섬이다. 소영주섬에는 북송(北宋) 때 세운 좌표 3 석탑인 삼담인월(三潭印月)이 있다. 현재 볼 수 있는 3 석탑은 명(明) 나라 때 재건된 탑이며, 탑과의 거리는 62m, 탑의 높이는 2m이다 (작성자 cosmos)
중국화폐를 잘 살펴보면 저석등의 그림이 들어가 있는 화폐가 있다.
소동파
서호의 소제(수디, 苏堤)는, 그가 태수로 있던 때에 만들어졌다. 오래된 거대 건축물만 보면 노동력 착취만 떠올리는 사람들이 한국에 유난히 참 많다, 군대 경험 때문일까? 하여튼, 그런 얘기가 유난히 많이 들려서 메모한 걸 적어 본다. 서호는 예전에 이런 모양이 아니었고 해안의 포구였는데, 항주 근처의 무림문(武林门)도 지나가는 장강(양쯔강) 대운하가 만들어진 다음(수나라 때), 진흙 등으로 막혀서 자연 호수가 되었다. 한데 이때도 지금의 서호 같은 모습은 아니었고, 무엇보다 이 때문에 장마에는 심하게 물이 범람하고 가뭄에는 다른 지대의 물이 고갈되어 버리는, 여러 부작용들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백거이도 이런 이유로 백제(白堤)를 지었다. 수백 년 후 소동파가 시민들과 함께 소제를 지은 이유도 비슷하다. 3년에 한 번씩 강이 범람하고 5년에 한 번씩 온 동네에 진흙이 쌓였다. 농사에만 직접적인 피해가 갔을 뿐 아니라, 이를 처리한다는 빌미로 시민들은 잦은 부역을 가야 했고, 이를 피하기 위한 뇌물 증여 등 부패가 횡행했단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 지금의 둑방길인 소제를 짓는 공사를 시작했고 그 덕에 지금 모양의 호수가 만들어졌다. 문제도 해결되고, 짓고 보니 모양까지 예쁘다... 아나옜다 기념이다 돼지고기 300 마리 콜! -_-; 이렇게 동파육의 일화가 함께하는(ㅋㅋ) 소제 공사는, 오늘의 서호를, 약간 오버하면 지금 천국으로 불리는 항주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게 소동파 기념관에 쓰인 말이다. 그래서 항주 사람들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소동파를 '오랜 시장(老市长)이라고 부르고 있다.(남의 글 퍼옴)
용정촌
뇌봉탑 앞 정류장에서 4번 버스를 타고 용정촌을 찾아갔다.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을 한참 달리다 산길로 오르막길을 몇 번 굽이치고 나서 용정마을 이정표를 발견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마을길로 들어서자 농사철이 아니어서인지 차가계 앞마다 노인네들이 모여 카드놀이와 마작을 즐기고 계셨다. 관광객들이 많이 왔다가는 마을이라서인지 차를 팔려고 길거리에서 호객하는 아주머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차밭이 잘 보이는 언덕으로 올라가 구경하고 이 동네까지 와서 차를 안 마셔볼 수 없어 비싼 차를 한잔 마시고 구계계곡을 따라 첸탄강변까지 걸어 나왔다.
무림문 부두
첸탄강변에서 버스를 타고 무림문부두를 찾아갔다. 부두 주변이 대규모 공사장이 있어 버스가 한정거장이나 지나서 내려줬다. 계획된 시간보다 한 시간씩 늦어지고 있다. 3위엔을 내고 공신교가는 유람선을 탄시간이 17:10분이었다. 서서히 어둠이 찾아들고 있었다. 이번여행은 유난히도 야경구경을 많이 하는 여행이 되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밤이 일찍 찾아왔다. 시간이 늦어 운하 박물관을 구경할 수 없어 공신교 주변을 관광하고 18:15 분배를 타고 무림문 부두로 돌아왔다.
공신교
경항운하
북경-항주 1794km
다시 서호야경
경항운하에서 유람선을 타고 다시 서호로 돌아와 보석산 야경을 보기 위에 보석산을 올랐다. 분수쑈지점에서 버스를 내려 호안변을 따라 보석산 입구까지 걷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온산에 있는 나무에 조명등을 설치해 눈은 즐거웠지만 나무는 괴로운 표정이었다. 의외로 야간에 야경을 구경하기 위해 산을 오르는 젊은이 들이 많았다. 항저우시내의 야경, 서호가 한눈에 들어오는 야경, 특히 백제의 두 다리의 야경은 너무 아름답게 보였다, 특히 보국탑과 주변경관이 어우러진 야경 또한 일품이었다. 항주에서 특히 서호 주변의 야경중 보석산의 야경보기를 적극 권해봅니다.
거지닭
보석산 야경을 구경하고 택시로 숙소가 있는 우산로 청하방 거리로 돌아와 야식을 먹고 항주의 여행은 마무리되었다. 야식 중 거지닭 먹어보기 종이와 진흙으로 싸서 구워 익힌 방식이다. 우리의 진흙구이 오리와 비슷하게 요리를 하는 방식이었다. 닭이 너무 적어 먹을 것은 별로였고 닭머리와 닭발을 그대로 요리해 열어보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2011년 4월 말 경 황산여행하면서 이곳을 거쳐갔는데 그때 한이 맺혔던 여행의 욕구를 풀 수 있는 여행이어서 좋았다. 사랑한 만큼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여행이었다. 저의 부족함을 실감 나게 느끼게 하는 여행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여행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황산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