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선 따라 대한민국 한 바퀴 13-2
2013년 10월 13일
인제군 해안면-양구-화천-철원군 김화읍 토성리
양구전쟁기념관 옆 민박집에서 잘 자고 아침 일찍 밥을 사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없어 아침도 간단히 라면밥으로 때울 수밖에 없었다. 아침출발은 사진자료를 검색해 보니 6:40분경에 첫 사진이 찍혔다. 인제군에서 양구군으로 넘어와 어제부터 453번 도로를 따라 계속 달리고 있다. 북으로 방향을 틀면 민간인 통제구역이다. 2-3km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달리면 어느 곳이나 군인의 통제소가 나오고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안내해 준다. 전쟁기념관에서 면사무소 쪽으로 달리다 보면 4거리가 나온다. 그곳에서 북쪽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방향을 꺾어 현리교를 지나 돌산령터널 쪽으로 달린다.
오늘 가는 길
인제군 해안면-오류리
양구군 동면 -팔랑리, 임당리, 덕곡리, 도사리.
방산면-고방산리, 송현리, 장평리, 현리, 금악리, 오미리.
화천군 화천읍-평화의 댐, 해산터널, 풍산리, 신읍리.
상서면-노동리, 부촌리, 산양리, 마현리 말고개.
철원군 김화읍-마현리, 양지리, 사곡리, 와수리, 김화, 청양리, 토성리.
해안면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쳐진 구릉지다. 천혜의 자연조건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면서 전쟁의 아픔을 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6,25 전쟁 중 펀치볼이라는 지명을 하나 더 명명받게 된다.
해발 1100m가 넘는 산등성이가 사방을 둘러싸고, 가운데 움푹한 곳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의 평균 고도는 400~500m, 면적은 여의도의 6배가 넘는다. 한국전쟁 당시 해안분지의 독특한 지형이 화채 그릇 같다고 외국 종군기자가 펀치볼이라 부른 데서 유래해, 지금도 해안면은 펀치볼이라는 별명이 더 익숙하다.
돌산령 터널입구에 올라서니 아침해가 솟아올라오고 있었다. 조금 높은 곳에서 아래를 바라보니 펀치볼이란 지명이 실감이 난다. 해안면 월산리, 후리, 현리, 오류리, 만대리 다섯 개 동내가 이천혜의 자연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돌산령을 넘어볼까 터널로 통과할까 잠시 생각에 잠긴다. 아직도 강원도의 험악한 지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핑계 삼아 갈길이 먼데 터널로 가자.
돌산령을 넘어서자 신나는 다운이 시작되어 단숨에 동면에 도착했다. 453번 도로와 31번 도로가 만나는 삼거리에서 우측북으로 가면 두타연으로 갈 수 있는 곳인데 민간인 통제구역이다. 두밀리 비사리를 버리고 동면소재지를 통과해서 방산 쪽으로 달리다 보면 평화의 댐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한다. 31번 도로는 이곳에서 더 이상 북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애석한 일이다.
동면에서 31번을 타고 내려오다 460번 도로로 바꿔 타야 평화의 댐으로 갈 수 있다. 이곳이 삼거리다. 이곳부터 다운의 즐거움은 끝이다. 다시 업힐이 시작되는 곳이다. 낑낑대며 오르다 보면 도고 터널이 나온다. 터널이 보이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그다음은 분명히 다운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힘겹게 올라선 길 양쪽으로 산이 둘러쳐져 있어 하늘밖에 보이지 않는다.
두타연 안내표지가 보인다.
청수골 뱅이골 학영골 아름다운 지명을 지나오면 두타연 안내소가 나온다.
두타연
위치 :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건솔리
휴전선에서 발원한 수입천 지류의 민간인 출입통제선 북방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수량은 많지 않지만 주위의 산세가 수려한 경관을 이루고 오염되지 않아 열목어의 국내 최대 서식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1천 년 전 두타사란 절이 있었다는 데서 연유된 이름이며, 휴전 이후 50여 년간 출입이 통제되어 도로변에 원시림을 연상케 하는 숲과 생태계가 그대로 보전되어 있습니다.
1일 전 13시 전까지 출입신청하여 관할군부대의 승인을 받아 출입할 수 있습니다.
두타연은 민간인 출입통제선 북방인 방산면 건솔리 수입천의 지류에 있는데 동면 비사리와 사태리의 하류이기도 하다.
유수량은 많지 않지만 주위의 산세가 수려한 경관을 이루며 오염되지 않아 열목어의 국내 최대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높이 10m의 계곡물이 떨어지는 폭포아래 형성된 두타연은 20m의 바위가 병풍을 두른 듯하고 동쪽 암벽에는 3평 정도의 굴이 있는데 바닥에는 머리빗과 말구박이 반석 위에 찍혀 있다.
▶출입신청
신청시기 : 1일 전 13시 전까지 신청(평일은 1일 전 오전 13시까지, 주말은 금요일 오전 13시까지 신청해 주세요)
출입인원 : 제한 없음(개인별 출입 불가-해설사동승)
접수처 : 양구군청 경제관광과(033-480-2251 FAX 480-2522)
출입일 : 매주 월요일은 제외
온라인 출입신청 : 두타연 예약하러 가기←클릭하면 두타연 예약사이트로 이동합니다.
▶출입절차
출입 횟수 : 1일 2회(10:00.14:00)
출발시간 : 10:00분 양구관광안내소(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상리 313번지)에서 출발
출입자 집결 : 양구읍 상리 관광안내소에 09:50까지 집결
※ 명품관에서 입장료 납부, 서약서 작성 후 출발
입장료 : 대인 2,000원, 소인 1,000원(30명 이상 단체 30% 할인)
출입안내 : 문화관광해설사
이곳도 도보나 자전거여행객은 출입할 수 없는 곳이다. 사진 몇 장을 입구에서 남기고 돌아설 수밖에 ---
방산면소재지 이사진을 보니 또 욕이 나온다. 저 또랑에 돈을 얼마나 퍼부은 거야 말이 안 나온다.
생각이 다를 수도 있겠다 싶다.
저것이 주민들의 생활환경 개선사업이라고 했겠지.
이산골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다.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안전하게 자전거나 잘 타세요.
아침에 일찍 출발하면서 아침밥을 먹지 못하고 출발했다. 오천터널 전 9:30분경 이침식사를 했다. 간식을 먹으면서 달렸는데 도저히 배가 고파 달릴 수가 없다. 공터를 찾아 자리를 잡고 라면을 끓이고 어제저녁 먹다 남은 식은 밥을 라면국물에 말아먹어도 아름다운 자연과 같이 하니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주변에는 꿀벌상자들이 많이 방치되어 있었는데 벌은 보이지 않는다. 오천 터널을 지나고 다운길을 조금 달리다. 보면 양화터널, 평화터널이 나오고 이곳을 지나면 평화의 댐이다.
평화의 댐
주변경치는 아름다운 곳이다. 화천댐이 만들어낸 파로호의 풍광이 주변의 산새와 어울려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이다. 평화의 댐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고 싶지 않다. 국민을 기만하고 정치꾼들이 만들어낸 사기 댐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지금도 땜질에 여념이 없다. 사기꾼 전두환과 그 졸개들!
평화의 댐을 지나 두 개의 터널을 지나고도 업힐은 계속 이어진다. 방산에서 9:00시 조금 지나 시작된 업힐이 밥 해 먹은 한 시간을 빼면 두 시간이나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해산터널까지 올라가야 한다. 표고 700m 높이다. 며칠 전 비수구미를 산악회에서 왔다 갔는데 그때 관광버스를 타고 반대쪽에서 올라왔는데 이런 말을 들었었다. 며칠 후 자전거 타고 이곳을 넘어가야 한다고 했더니 동료들이 까무러친다. 한마디로 너는 죽었다로 표현이 끝났다. 걱정이 태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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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해산터널 이정표가 보였다. 반가웠다. 비수구미의 이정표도 정감이 느껴졌다. 이곳에 민가가 한동 있는데 자연 경치와 너무 잘 어울렸다. 산악회에서 왔을 때 자전거 타고 이곳을 넘는다고 했더니 동료들이 한 말 “너는 죽었다” 죽지 않고 올라왔다. 해발 700m 터널길이 1980m 이곳에는 비수구미로 내려가는 트레킹코스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비수구미에서 평화의 댐으로 이어지는 길은 10여 km가 된다. 화천댐의 파로호와 너무 멋있게 어우러져 자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하는 아름다운 곳이다.
해산령에서 풍산리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다. 해산터널에서 찍은 사진의 시각이 12:56분 삼거리이정표 사진이 13:08분으로 기록되어 있다. 2시간의 사투 끝에 올라선 곳에서 내려오는 데는 12분이 걸려 내려왔다. 너무 허망했다. 조금 천천히 내려올걸 구경도 하면서, 점심시간이 되었다. 시간을 놓치면 또 얼마나 가서 식사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아래사진의 음식점에서 흑염소 전골을 먹었다. 여기도 1인분은 안 된단다. 2인분 시켜서 먹고 나머지는 포장해서 잔차에 실었다. 아주머니께서 공깃밥도 두 그릇 싸주셨다. 그것으로 오늘 저녁 내일 아침까지 해결하고 힘내서 잘 달릴 수 있었다. 식당아주머니 고맙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460번 도로를 달리다 풍산초교 앞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새덕이 고개를 넘어 신읍리로 가로질러갔다. 여기서도 우측 북쪽은 통제구간이다. 좌측 화천 방향으로 달리다 461번 도로에서 화천천을 따라 노동리로 달리고 있다.
노동리에서 461번을 버리고 군도 5번 도로로 가야 최북단의 민간인 통제선으로 가는 길이다. 이곳은 일출부터 일몰 시까지만 민간인이 통행가능한 곳이란다. 노동리-산양리-마현리 마현리 통제소에서 일몰이 되면 통제한다고 했다. 아직 오후 4 시기 때문에 별다른 통제를 받지 않고 말고개의 업힐구간을 향해 오르고 있다.
말고개
한북정맥의 산줄기이기도 하다. 지난해까지도 철저하게 통행이 통제되었던 구간이었다고 한다. 이제 이곳만 넘으면 강원도를 벗어나게 될 것이다. 1-1단으로 마지막 힘을 쓰면서 오른다. 10km 오르막길이다. 주말이라서인지 군부대막사에서는 노래방기기의 음악소리가 쩌렁쩌렁 계곡을 시끄럽게 오염시키고 있다. 군인아저씨들이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느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
한북정맥
군사분계선-삼천봉 (815m)-적근산 분기-말고개 (690m)-대성산 (1,174.7m)-절골고개-1,041m 봉-수피령-복주산-광덕산. 산줄기 타기는 수피령에서부터 가능하다. 어느 해인가 겨울 수피령에서 광덕고개까지 한북정맥 산줄기 타기를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말고개 마현리 지명으로 봐서는 말에 얽힌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
- 말고개 설화
근남면 마현리에 있는 말고개는 5번 국도로 철원군과 화천군의 경계에 있는 높은 고개인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한다. 임진란왜란 때 왜군 장교가 군졸을 대동하고 말고개〔馬峴〕를 넘어 화천 방면으로 가려했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는 노변(路邊) 부근에 있는 천불암 앞을 지나갈 때 말을 끌던 안내인이 “이곳은 신성한 곳이니 하마(下馬)하여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하였으나 왜군 장수는 이를 거절하고 강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타고 가던 말의 말발굽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왜군 장수는 이에 화가 나서 자기 애마의 머리를 장검으로 내리쳤다. 왜군 장수는 쓰러진 말의 피를 천불암에 뿌렸다고 한다. 그때 안내인의 말을 무시하고 고개를 넘어가던 왜군 장교는 벌을 받아 계곡으로 떨어져 죽었으며, 그 후 왜군들은 수시로 이 말고개를 넘다 계곡으로 떨어져 죽었다고 전하여지고 있다.
말고개 반대쪽 통제소를 벗아날 때까지 계속 다운구간이다. 5번 도로를 통행할 수 없었다면 56번 도로의 수피령 고개를 넘어서 김화로 가야 했을 것이다. 용암삼거리 통제소에서 생창리 방면으로는 민간인 출입통제구간이다. 5번과 43번의 마지막 부분을 달리지 못하고 사곡리 쪽으로 오르막을 오르고 있다. 오르막이 끝나면 43번 4차선 도로를 만나게 된다. 김화읍에서 4차선 도로를 버리고 옛길 2차선 도로를 탔다. 해는 서쪽의 금학산, 고대산 너머로 넘어가고 가을 날씨 때문인지 쓸쓸해진다. 숙소를 찾아가야 할 텐데---
툭트인 철원평야의 들판 때문에 오늘은 달리면서 낙조의 아름다운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밤이 찾아오고 있다. 시골여행길은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에 들어가야 한다. 어두워지면 숙소 찾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철원 동송에서 잘 계획이었는데 해도 넘어가고 동네분에게 물었는데 똑바로 가다 도창리 쪽 우측에 모텔이 있다고 가르쳐주셨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숙소를 찾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