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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운남성(雲南省) 여강(리지앙 丽江)

왜 그럴까? 2025. 1. 18. 22:21

중국윈난 성여행

 

2014년 5월 9일

여강(리지앙 江) 해발 2400m

리지앙고성, 옥수채. 속하고 진, 옥룡설산

 

어제 쿤밍에서 22:40분에 출발하여 리지앙에 8:00경에 도착했다. 덜커덩거리는 침대칸 열차를 타고 밤새 달리는 재미는 우리나라에서는 느낄 수 없는 풍경이다. 쿤밍에서 리지앙 가는 길에 따리라는 도시가 있는데 따리는 나오면서 구경하기로 하고 통과했다. 아침 리지앙역에 도착하자 역 한쪽 편에 일렬종대로 쭉 늘어서서 숙박시설을 호객하는 호객꾼들이 뭐라 소리치고 있었다. 중국여행객들이 다 빠져나가고 우리가 맨 마지막까지 광장에 남아있었다. 숙소 흥정을 하다 실패하고 끝내 시내버스를(버스비 1위엔) 타고 시내로 들어갔다. 목적지는 리지앙 고성 근처에 가서 숙소를 정할 목적이었는데 버스종점까지 가는 바람에 다시 물어 되돌아 시내로 들어와 고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장을 구경하고 아침을 사 먹었다. 시장구경을 하면서 고성을 찾아가고 있는데 고성주변에 숙소호객꾼을 만나 숙소(방 2,2박 300위엔)를 흥정하고 고성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민박을 정했다. 

상산시장
50도 민속주도 물병으로 두개를 40위엔 주고 채웠다

 

옥수채

리지앙 고성의 수원지로 나시족 조상신을 모신 사당이다.

계단식으로 잘 다듬어진 인공연못에는 송어와 비단잉어가 볼거리이다.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주점이 나오는데 민속주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나시족 할아버지들의 공연장이 있는데 관광객이 많지 않아 공연을 하지 않고 몇몇 할아버지들이 차를 마시고 계셨다. 길을 따라 조금 더 오르면 사당이 나오고 조금 내려오면 수원지에서 나오는 약수를 맛볼 수 있다. 계단식 연못에는 송어들이 자유스럽게 노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구경을 마치고 나오는 곳에서 할머니들이 춤을 추면서 적선을 요구하셨다. 몇 푼 드리며 같이 사진 찍기를 허락해 주신다.

입장료 50위엔

 

동파문자

동빠 문자 (동파 문자)는 중국 윈난 성의 나시족이 사용하는 상형문자이다. 한자를 빼면 천년이 넘는 역사가 있어 현재도 쓰이고 있는 단 하나의 상형문자이다.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글자들이다.

나시족 할머니들과

 

속하고 진

백사고진

두 장소를 구분하지 못하겠다. 시골스런 풍경과 집을 지을 때 치는 담장의 모습들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흙벽돌의 담장, 잘 다듬어진 돌담, 사암을 잘 다듬어 아름다운 색깔을 뽐내는 석재의 빛깔이 너무도 예뻤다. 소박하게 사는 이곳 주민들의 모습도 보기 좋았다

중국에서 커피가 제일 비싸다. 커피한잔에 25위엔 우리돈으로 4250원이다. 11일동안 딱 한잔 먹었다.

 

삼안정

리지앙고성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전통 우물이다. 물길의 흐름에 따라 맨 위는 식수 중간은 채소를 씻는 곳 맨 아래는 빨래하는 곳이란다. 지금도 이곳 나시족들은 이 규율을 엄격히 지킨다고 한다.

마을뒤 언덕에서 내려다본 마을 풍경

 

2014년 5월 10일

옥룡설산

리장고성-옥룡설산 왕복버스비-40위엔, 옥룡설산 입장료-105위엔, 케이블카-180위엔, 셔틀버스-20위엔

 

이번 여행에서 비용 지출이 가장 높은 여행코스다. 아침 출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하루 종일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짙은 안개로 시야가 좋지 않아 설산을 구경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대연 전에서 북으로 35km나 떨어져 있는 곳이다. 5596m 주봉을 중심으로 13개의 봉우리가 펼쳐져 있다. 나시족의 성산이며 동파문화의 기원과 수많은 설화를 가지고 있는 산이기도 하다.

 

4500m 높이를 경험해보지 못한 3인들 여행기를 보고 국내에서부터 걱정이 태산이었다. 고산증에 대한 공포를 안고 이번여행을 출발했다. 저의 히말라야 베이스캠프 트레킹 경험을 이야기해 줘도 와닿지 않은 게 현실이다. 다들 오르는데 우리라고 별일 있을까, 부딪혀 보는 거지 정도였다. 어제 관광하다 약국에서 준비한 홍징티엔과 산소통이다. 아침에 출발하기 전 비아그라 25mg씩 먹고 김은 홍징티엔까지 먹고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출발했다.

 

고성에서 11인승 정도의 버스를(옥룡설산 가는 버스는 7번 버스 타는 곳은 마오동상이 있는 맞은편) 타고 옥룡설산으로 가는 도중 재미나는 일이 벌어졌다. 입장료를 내는 곳을 통과하기 상당거리 전에서 상하이에서 오신 두 부부가 있었는데 운전기사와 뭐라 이야기하더니 아줌마가 몸을 숨기신다. 감을 잡았다 한 명의 입장료를 내지 않기 위한 행동이란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우리는 박장대소로 웃을 수밖에 아줌마의 몸을 숨기는데 동조자가 되어 주었다.

 

감해자

옥룡설산 입장료를 내고 15분 정도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더 올라가야 한다. 이곳에서 저수지처럼 물이 고여있는 백수하, 해발 3200m를 리프트 타고 오르는 고산초원 운삼평, 해발 3500m를 리프트로 오를 수 있는 모우평으로도 갈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케이블카를 탈 수 있는 3356m까지 올라가야 한다. 여전히 날씨는 짙은 안개가 끼여 투시거리가 100m도 안 된다.

 

옥룡설산 4506m에 드디어 도착해 기념사진을 찍었다. 세 사람은 별이상증상은 없었는데 김 만 두통을 호소하면서 연거푸 산소를 마시고 있었다. 용감하게 그곳에서 흡연을 시도하다 두통이 심해져 혼쭐났다. 중국아이들은 신났다 눈구경을 할 수 없는 곳에서 온 친구들인지 눈밭에서 뒹굴고 사진 찍고 난리 법석이다. 200여 m를 더 오를 수 있다는 여행 정보였는데 계속 눈이 내려 나무데크로 길이 만들어져 있는데도 관리인이 더 이상 오르지 못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아쉬움만 한아름 안고 뒤돌아 설 수밖에 없었다.

 

흑룡담공원

옥룡설산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고성 근처 시장에서 점심을 먹고 옥천공원 혹은 옥수용담이라 불리는 공원으로 갔다. 청나라 건륭황제 때 조성된 호수공원이며 공원 내에는 옥대 공교, 득월루 등이 볼거리다. 이곳이 고성 수로로 내려가는 또랑물의 수원지 역할을 하고 있다.

 

 

리장고성

고성보호비-40위엔(옥룡설산, 속하고 진 입장 시에도 사용)

리지앙 대연전이 공식명칭이란다. 사방가를 중심으로 골목골목이 옛것으로 가득 차있다. 수백 년 된 돌길과 명청시대의 고가옥이 남아있는 거리 마을 골목을 따라 흐르는 물길이 이색적이다. 전통복장을 한 나시족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거리이다. 사방가에서 나시족의 민속춤공연을 즐길 수 있고 현지인들과 어울려 한판 놀 수 있는 시간도 주어졌다. 이곳이 중국인가 할 정도로 자유로운 도시이고 옛것을 만끽할 수 있는 거리인 것은 분명한데 한편으로 너무 상업화되어 버린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밤이 되면 주점의 요란한 싸이키조명과 음악은 이곳의 풍경과는 어울리 지 않은 것 같다.

 

만고루

사자산 정상에 우뚝 솟아있는 사원인데 루의 맨 꼭대기까지 개방되어 있어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남산의 타워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입장료가 50위엔이나 받아 다들 포기하고 홀로 구경하고 내려왔다.

구시가지의 고성과 신시가지의 빌딩들도 볼 수 있고 멀리 옥룡설산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흑룡담 맞은편에 산을 올라 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허락지 않아 오르지 못함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사자산위에있는 만고루에서 바라본 구시가 전경
신시가지 모습,구름에가린 옥룡설산모습

 

목부

중국 중앙정부는 13세기에 이르러 나시족의 리지앙을 복속시켰지만 중앙에서 너무 멀어 직접 통치하기에 무리가 있어 중앙 정부에 호의적인 목 씨 가문을 내세워 통치하게 하였다고 한다. 목부는 리지앙의 최고 권력자가 머물었던 관저라고 한다. 1996년 지진 때 완파되어 복원한 건물이다 보니 입장료가 비싸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만 쳐다보고 돌아섰다

 

리장의 야경을 끝으로 이곳의 관광은 끝났고 내일은 호도협으로 출발합니다

리장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