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E.B.C 트레킹 돌레ㅡ포르체 탱가ㅡ남체ㅡ몬조
2011년 1월 1일
돌레ㅡ포르체 탱가ㅡ남체ㅡ몬조
DHOLE의 아침 어제저녁 눈발이 조금 보이더니 자고 일어나니 온 세상이 하얗게 뒤 덮였다. 새해 첫날 하얀 눈이 온천지를 뒤덮었다. 행운을 가져다주는 눈이라 생각된다. 내내 좋은 날씨가 연속되어 트레킹 하는데 더 할나위 없이 좋았다. 이 정도면 오히려 걷기가 편했다. 먼지도 나지 않고 멋진 겨울 풍경을 보면서 걸을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어제 쎌파와 가이드의 전화 통화로는 오늘 팍딩에서 동무들을 만나기로 했다. 7시 출발한다고 해서 6시에 일어나 식당으로 갔다. 어제저녁 자기 전에 아침을 에그샌드위치와 컵라면 두 개를 6시 반에 끓여달라고 맡겼는데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또 사고가 터졌다. 컵라면 두 개를 아침으로 부탁했는데 자기들에게 먹으라 준 것으로 이해하고 먹어 버린 것이다. 식당주인에게 물어보려 하자 쎌파가 막았다. 눈치채고 알았다 하고 에그샌드위치를 하나 더 시켜 둘이서 나눠 먹고 8시에 출발했다. 하얀 설산을 구경하면서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과 행복에 빠져 걷고 있다. 이제 이틀이면 트레킹도 끝날 것이다. 갑자기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마스 연말연시인데 집에 전화 한 통화 없이 혼자 즐거움에 빠져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솔직이 여행초반 몸의 힘겨움으로 집생각 아내생각 자식들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힘든 일정이 연이어져 세상의 모든 것을 벗어 버린 것 같은 느낌 ---어쩌면 계획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집중하다 보니 집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여보 미안해요.
PHORTSE THANGA를 지나면서 두드코시강 건너편으로 포르체 마을이 보인다.지금은 두드코시 강을 따라 계속 내려가고 있다. 거의 강위쪽으로 2,300m 위치에 길을 따라 거의 평지를 걷는 기분으로 걷고 있다. 포르체탱가는 강가 마을이라는 뜻이란다. 강에 거의 접근했다가 남체로 가기 위해서는 언덕 위 곰파가 있는 곳을 넘어야 한다. 지도상에 MONG LA 라 표기되어 있는 곳인데 표고차 300M는 올라가야 한다. 쎌파와 포터도 힘겨운지 오르막에서 쉼의 횟수가 점점 많아진다. 3680에서 3973으로 올라서야 남체가 보인다. 길이라는 것이 인간들이 최초에 지나갈 때 가장 편한 길을 택해 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곳에서의 길은 좌측으로 거의 직벽에 가까운 낭떠러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갈지자로 길을 낼 수밖에 없었던 코스다.
Mong La에 10시에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 처음 동무들을 몬조에서 만나기로 했을 때는 여유가 있었는데 팍딩으로 변경되어 더 내려가서 만나야 하기에 바빠졌다. 오늘은 새해 첫날 만나는 사람마다 Happy New Year 가 연발이다.
라마스테는 잠시 접어두고 영어로 인사말을 하는데 영거슬린다. 동양인처럼 생긴 사람을 만나면 혹시나 하는 맘에 안녕하십니까라고 외쳐본다. 멀뚱하니 인사도 받지 않는다. 일본인처럼 생겨 재팬이라고 했더니 아가씨 싱가포르라고 대답한다. 해피뉴이어---. 한참을 내려와 몽라를 지나고 이제 남체를 향해 내달린다. 내려가는 길은 여유가 생겼다. 올라오는 트레커 내려가는 트레커들과 인사도 나누고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해피니유이어!
어느 나라에서 오셨나요. 프렌츠란다. 불어 같은데 프랑스 어느 도시인 줄 알았다. 무식한--- 국가명도 모르고 외국 여행한다고 껍죽대다니, 나는 코리아 서울이라고 했는데 잘 모르는 것 같다. 나이가 어떻게 되셨습니까 자매가 둘이서 여행 중인데 49세와 53세란다. 나도 53세라 답한다. 그다음 할 이야기가 없다. 여기까지가 한계다. 어렵다 조금만 더 할 수 있었으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자매끼리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길래 더 이상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 앞질러 갔다. 몽라에서 사나사까지 내리막길이 계속 이어진다. 급경사 바위 위에 산양가족들이 하얀 눈밭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뜯고 있다. 한컷 찍고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Everest View Hotel을 우측 산꼭대기에 끼고돌아 남체를 향해가는 길은 조금 오르막길이다. Sanasa마을은 남체 교쿄 E.B.C로 갈라지는 삼거리 마을이다. 12:00시 조금 넘은 시간에 남체에 도착해 오를 때 머물렀던 로지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주문하고 기다리면 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아 부엌을 사용할 수 있냐고 물었다. 흔쾌히 OK라 한다. 마지막 남은 라면 한 개를 들고 부엌으로 가 냄비에 물을 끓이고 라면을 넣어 끓인 다음 밥 일 인분을 달라해 밥을 넣고 한참 끓이다. 계란도 개로 마무리한다. 2인분의 식사가 준비되었다. 부엌 빌린 비용, 밥 한 그릇, 계란두 개 값으로 615 루삐(10000원)를 지불했다. 바쁘게 먹고 내려가는 길 바자르에 들러 지나가는데 시장이 썰렁하다. 토요일에 장이선 다는데 시장은 벌써 파하고 몇몇 상인들만 남아있다. 일찍 시작해서 일찍 끝나는 게 이곳의 생활인 것 같다. 시장보고 집에 돌아가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일찍 파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쫓기는 트레킹. 바쁜 트레킹. 미안한 트레킹.---
LOBUCHE에서(12월 29일) 점심을 같이 먹고 팀이 갈라져 강, 강, 장은 PHERCHE로 내려가고 전, 박은 DZONGLHA로로 헤어졌다 루크라에 도착하기 전 만나야 미안함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것 같아 무척 서둘러 내려왔다. 12월 22일 트레킹 이틀째 남체에 들어서면서 첫 번째 집에서 차 한잔 마신 인연으로 기웃거리며 지나 치려 하는데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가 들렸다. 아뿔싸 지금쯤 팍딩에 다 갔으리라 생각했는데 강, 강, 장이 그 집에서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남체 로지에서 점심 먹으면서 주인에게 물어봤다. 우리 동무들 몇 시에 내려갔냐고 7:30분에 내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왔는데 30분 거리에서 당구치고 술 먹고 포터들과 어울려 닭을 잡아 삶고 있었다. 우리가 금방 도착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고 남체시장 구경하고 그 집에서 놀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찌 됐든 반가웠다 4일 만의 만남이었다.
모레면 루크라에서 카트만두로 가는 시간이다. 트레킹 막바지 긴장이 완전히 풀린 상태다. 강, 장 럭시술에 기분이 많이 업되어 있었다. 가이드도 술을 너무 좋아한다.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는 것 같다. 나 어린 시절 고향집이 생각난다. 집안에 부엌, 침대, 살림살이 가재도구가 큰 홀로 되어있는 공간에 모두 배치되어 있다. 압력솥에 닭 한 마리 넣고 장작을 태워 닭을 삶고 있는 전경이 우리네 시골부엌에 가마솥에 닭 삶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큰 홀에는 포켓볼다이가 한대 설치되어 있다. 이 높은 위치에 저 다이를 어떻게 가지고 올라왔을까 긍금하다. 그 다이에서 포터와 강이 내기 당구를 치느라 난리 법석이다. 포터들도 럭시를 꽤나 마셨나 보다. 소리 지르고 기분 좋아 노래 부르고 어우러져 신나는 잔칫집 분위기다.
정리하고 15:00시 몬조까지 내려가기로 하고 남체 주막집을 나섰다. 흥이 가시지 않아서인지 그동안 정 때문인지 모내 술자리를 아쉬워하며 뒤로하고 하산하기 시작했다 시장에 가서 닭을 두 마리 사서 몬조 가서 모두 모여 파티하자고 하니 기분이 좋아 포터 셀파 가이드 신이 나서 계곡이 쩌렁쩌렁할 정도로 소리치며 노래 부르며 몬조로 내려가고 있다. 세 개의 출렁다리를 건너고 조르살레를 지나면 입장료를 냈던 몬조가 나온다. 몬조에 도착 로지를 정하고 닭을 잡아 요리해 줄 수 있느냐고 로지주인에게 물었는데 안 된단다. 올라갈 때도 남체로지에서 안 된다고 해 먹지 못했는데 내려오면서 맡겨뒀던 닭을 가져와 마지막 루크라에서 닭요리를 해 먹을 수 있었었다. 기분내면서 즐거운 새해첫날을 보내려 했는데 틀렸다. 종교적 이유 때문인 것 같다 자기 마을에서는 피를 볼 수 없단다. 따라야지 로마에 왔으니 로마 법을 따라야지 어쩌랴. 우리의 욕심이 너무 과했던 것은 아닐까 신성시하는 자연를 그들의 풍습을 우리의 눈으로 우리의 잣대로 재단한 잘못을 저질렀다. 루크라에서 마지막 이별파티를 하기로 하고 아쉬움을 맥주로 달래며 정초의 밤을 보냈다
치즈 피자로 저녁을 먹었다. 입맛이 없어, 음식향이 싫어, 먹지 않은 친구도 있다. 네팔에서 15일여를 지냈고 그동안 여러 음식 맛을 보며 여행했는데도 아직도 이곳 음식이 냄새가 싫고, 향이 싫고, 입맛에 안 맞고 한국에서는 손도 않됐는데 해가면서 음식을 먹지 못했다. 너무 잘 먹어서 미안했다. 21:17분 자야겠다. 이번트레킹 여행 중 또 다른 측면에서 사람의 관계를 뒤돌아보게 하고 나 자신을 뒤돌아 보게 하는 여행이 되었다.
2010년 12월 29일-2011년 1월 1일
로부제에서 점심을 먹고 가네 못 가네, 두 팀으로 나누자, 5명이 같이 가자, 간다 못 간다.
결국 두 팀으로 갈라졌다. 강, 강, 장은 페리체로 전, 박은 종로로 ---
과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말처럼 욕심이 결국 부족함을 채우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적응이 어느 정도 되고 체력이 뒤받임되는 사람, 고소적응과 체력에 문제가 발생한 사람.
이제 트레킹을 마무리해 가는 시간 저녁 술 한잔 하면서 하고 싶은 말들을 쏫아냈다
아쉬움과 조금은 미움, 끝까지 해내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책, 욕심을 채우기 위해 어려운 상황인데 헤어짐을 선택한 전, 박. 강, 강, 장은 체력 때문에 쉬운 길을 택했을까. 아닐지 모른다. 조라패스에 욕심을 누구보다 초반에 강하게 피력했었는데 친구와 같이 하기 위해 어려운 선택을 했던 것이라 생각된다.
강은 전에 대해 불만이 있었던 것 같다. 형이 그런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도 많이 했다. 체력이 뒷받임되고 고소적응만 된다면 혼자라도 가겠다는 마음이었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선택할 수밖에 없다.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옳은지, 5명이 한길로, 각자 가고 싶은 대로, 누구도 결정 내릴 자는 없다.
각자 개인이 선택하는 것이다. 옳고 그름도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의 행동이 옳았고 글렀고를 누가 판단 한단 말인가.
계획된 코스를 소화하지 못함을 누구에게 , 누가, 누구를 나무라지 말았으면 한다.
간자, 못 간 자 모두의 마음이 편치 않았으리라. 계획대로 소화한자, 몸이 따라주지 못해 계획을 변경한자.
행동을 통일해야만 정도인가. 몸이 따라줘 가고자 용기를 낸 자, 몸이 되지 않아 갈 수 없는 길을 포기하는 용기도 모두 훌륭한 결단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서로의 선택을 존중해줘야 한다.
각자의 선택을 누구도 칼자루로 재단할 수 없다고 감히 말하고자 한다
몬조에서 2011년 1월 1일
초모룽마
21-29 맑음 햇빛 쨍쨍
30일 약간 바람 하늘에 약간구름
31일 바람이 심함 구름이 많아짐
1일 눈이내림 가스 자욱
초모룽마신이여
당신의 시샘입니까
아님 그대로입니까
얄팍한 인간의 마음으로
당신을 재단합니다
조금의 바람이 조금의 가스가
조금의 구름이 일어난다 해서
찬양에서 원망으로
인간의 얄팍한 아니 내 마음
초모룽마신이여 용서하소서
1/1일 몬조에서
아내에게 아들아, 딸아
2011년 새해 첫날 자식 사랑이 뭔지 부모의 역할이 뭔지
당신과 같이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가족과 여행하는 사람
초모룽마 산간오지 싸늘한 로지에서 형제 자매가 여행하는 사람
당신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 봅니다 여러 형태의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는 게 너무 많구나
필이 더 이상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늦었다 생각할 때 늦지 않았다는 말---
같이하지 못함이 끝내 눈물로--- 또다시 생활에 쫓기는 아빠가 되겠지만 언젠가
전화하려 했는데 조그마한 것부터 실천해 보고 싶구나
어떤 이유 때문에, 무엇이 그리 아까운지 아들 딸 사랑한다
아내여 새해에도 초모룽마 시작지점 몬조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난해만큼만 2011년 1월 1일
못난 남편 옆에서---
사랑합니다 여보
2011년 1월 1일 E.B.C트레킹 중
추억
트레킹 중 이런 글도 썼구나
그때는 고민도 많았고 마음도 아파으리라 생각한다
단체 여행에서 생길 수 있는 충분한 상황이라 생각된다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고 피해를 주지 않으려 최선의 노력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12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